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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공인탐정 그는 한국판 유우종 교수 [인터뷰]
호주 공인탐정 그는 한국판 유우종 교수 [인터뷰]
1. 안녕하세요. 유우종 교수님 본지 인터뷰에 앞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종손인 아버지는 9남매 형제 중 장남이었고 9번째 막내 삼촌께서 1982년 한여름 밤 12시경 서울 중구 3류급 모 호텔 계단에서 추락사로 사망했다는 사법기관에 사고경위 결과를 통보받고, 그 후 종손이며 장남인 나의 꿈에 피를 흘리며 3개월 정도 나타나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때는 이미 용미리 묘지에 묻힌 상태였다. 그날 추락사한 바로 옆 일미식당에서 친구들과 식사와 술을 곁드린 자리를 하고 친구들은 보낸 후 막내삼촌은 더워서 호텔계단에서 무언가? 생각하며 담배를 피며 쉬고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이 좀 지난 후 식당 다락방에서 잠자던 막내삼촌 손위 삼촌께서 비명소리가 난후 쿵하고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동생이 추락사로 사망했다고 한다. 그 당시 자살할 이유는 없고 열심히 살았다고 한다. 나의 꿈속에 나타나 피를 흘리며 억훌함을 하소연 한 것으로 봐서는 타살 인듯했고 또한 시골 법원주변에서 해결사라는 브로커로 인해 피해자 가해자가 뒤바뀌는 억울함을 당한 농민이 구치소 생활을 하고나오면 술에 연연하다 생을 마감하는 것을 보며 최소한에 피해자 가해자 뒤바뀌는 억울함이 없는 세상을 만들자 라고 1982년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한국판 셜록홈즈 만능인 맥가이버가 나의 우상 이었다. 그때부터 꿈을 향한 공부를 시작했고, 대학교를 졸업 후 사회에서 배울 수 없는 특수교육을 배우고자 “특전사”로 지원입대 특전사 사령부 소속 특수전학교에서 특수전을 가르쳐왔고, 1990년에 전역 후 독일. 호주 등에서 탐정이라 불리는 “민간조사관”교육을 받고 호주 주정부에서 발행하는 공인탐정 자격증을 대한민국1호로 취득했고 또한 2000년부터 대한민국최초로 한국능률협회 사회교육원에서 탐정. 민간조사최고전문가 과정을 실시해왔으며, 그 후 산업인력공단에서도 진행 현재는 한국민간조사중앙회(Pikorea.org)에서 주관하고 호서대학교 벤처대학원 평생교육원에서 “탐정.민간조사최고전문가 과정”을 실시하고 있다. 그는 대한민국 최초로 탐정교육제도를 실시하면서 대한민국 국회에서도 국회의원들을 설득시켜 OECD가입국 중 유일하게 대한민국만 없는 탐정법 이라 불리는 민간조사업법을 대한민국 최초로 “민간조사업법 법 제도화를 위한 공청회”를 많은 국회의원의 힘을 빌려 대한민국 최초로 법 제도화에 시동을 걸었으며, 또한 국민과 정부기관에도 필요성을 알리고 방송 . 신문등 수많은 언론을 통한 노력한 결과 현재는 경찰청 법무부 서로 관리 감독한다는 이유로 법제도화가 늦어지고 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변호사협회에서 사생활침해나 개인정보 난발 문제로 반대를 하는 목소리를 하는 바람에 법제도화가 늦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변호사협회에서는 민간조사업법 및 민간조사분야를 깊이있게 들여다보면, 그런 목소리를 내지 않을 것이다. “민간조사원” 민간조사업법이 법제도화 된다해도 사생활침해나 개인정보를 난발할 수 없다. 오히려 음지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을 관리 감독할 수 있을 것이다. 법제도화가 잘되어 있는 독일이나 호주 미국 등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엄격하다 한다. 민간조사원은 법정 증거자료나 사실여부 조사 시 사건의 사실그대로 조사할 때 사생활 침해나 주거지침해를 해서도 않되며, 공공장소에서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 비디오 사진 방법으로 촬영 기록한 것을 법원에서 인정한다. 호주 민간조사관 경우 조사업무시 조작이나 변조 허위증거자료 조사보고서를 법원에 제출 시 당사자는 면허기 취소되고 몰론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하며, 보증인 3명에게도 민사적인 책임을 진다. 2. 호주 공인탐정을 취득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십시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는 최초로 호주공인탄정1호 유우종 회장은 한국에 탐정.민간조사업법을 법제도화하고 PI교육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전락으로 PI제도가 선진화된 나라 중 가장 잘되어 있는 나라에 가서 연수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는 영국이나 일본등은 민간자격이 있고 독일도 가서보니 좀 미숙한 분분이 많았고, 그래도 호주 퀸즐렌즈주에서 인정하는 Schppl에서 공부를 했고, 교육은 주정부 메뉴얼대로 진행 하며 PI3급 과 PI4급이있으며, 최고높은 PI4를 취덕했다. PI4를 취덕 시 한국사람 중 1년이상 알고지낸 사람을 3명을 보증인으로 세워야 하며 1년또는 3년마다 세금을 내야만 호주에서 PI업무를 할 수 있다. 민간조사관 PI4네밸위에는 Diplomar는 티처과정이 있다. Diplomar는 지도자 또는 선생님 자격으로 보면된다. 호주 주정부에서는 Diplomar에게 권한을 준다. 다만 주정부에서 정하는 Program대로 가르쳐야 한다. 간략하게 말하면 PI Diplomar는 정해진 Program으로 예비PI들에게 가르치고 자격검정을 할 때 모든 기록은(비디오. 사진) 아날로그 방식으로 촬영기록 해야만 하며, 이론과 현장실무수업과 자격검증 역시 아나로그방식으로 기록하며, 수업과 자격검정 모든 자료를 주정부에 첨부하며 주정부는 평가 검정하여 3개월 안에 각 나라에 있는 PI합격자에게 증서와 PI Licence를 부여한다. 독일 호주 미국 일본 등등 연수와 초청해서 연구한 결과 호주 PI Licence 제도가 가장 잘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3. 한국사회에 아직 탐정이라는 인식이 낮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십시오. 한국에서는 탐정이라는 단어가 정착할 수가 없다. 1999년 전 한나라당 하순봉 국회의원 보좌관 정순훈 보좌관과“공인탐정” 법안을 만들었다. 정보좌관께서 공청회를 하고 법안을 발의하자고 했을 때 저는 반대했다. 왜냐하면 탐정이라는 뜻은 국민들에게 해결사 사생활침해 뒷조사 간첩 정탐꾼 등등 아주 부정적이기에 이것을 바꾼다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 보다 어렵다는 것을 유우종 회장은 주장 했다. 또한 국어 사전에도 보면 “탐정”훔쳐보다, 엿보다, 간첩행위, 사생활침해, 등등 아주 부정적이며 탐정 드라마나 영화를 보더라도 불법행위가 약 70%를 차지한다. 그래서 유우종 회장이 반대하는 바람에 공청회를 하지 못하고, 17대국회로 넘어 갔다. 이상배 국회의원을 설득하여 2005년 8월 29일 대한민국 최초로 민간조사업법 법 제도화를 위한 공청회를 국회 도서관 대회의실에서 실시했으며, 그 후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님께서도 발의를 했고, 18대국회 19대국회 20대 국회에서 지속적으로 법 제도화를 위한 노력을 해왔다. 결국은 국민은 뒷전이고 관리관청 문제로 늦어지고 있다. 민간조사업법이 법제화 되면 전문가적인 수준 연수와 엄격한 자격검정관리 또한 중요하며, 단 한번이라도 불법이나 법을 위반 시 PI Licence가 취소된다는 인식을 주어야하며, PI Licence발급 시 책임보험제도와 보증인을 1명을 안전장치 하는것이 바람직하며, 업무 조작이나 허위일 경우 단1회 라도 자격증(PI Licence) 박탈 및 보증인에게 민사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 4. 현재 법안에 계류중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언제쯤 보편화가 될까요? 민간조사업법이 대한민국최초로 2005년 8월 29일 국회에서 파종이되었으나 ,경찰청과 법무부가 서로관리 하겠다고 힘겨루기 하는 것과 변호사협회에서 반대하는 문제로 지연되었다가 17대 18대 19대 국회에서 회계만료로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서도 발의했고, 문정부에서도 국정과제로 제도화한다고는 하지만 20대 국회에서도 오리무중이다 아마도 21대 국회에는 좋은 결실이 있을듯 합니다. 5. 한국사회에 탐정자격증이라는 민간자격증이 많이들 있습니다. 모두다 같은 것인가요? 현재 탐정과 민간조사라는 명분으로 자격증이 발급하고는 있으나, 각자 마인드가 달라서 수준이 천차만별이다. 그래도 최대한 민간조사원이란 어떠한 직업 업무인지 왜필요한지, 조사 시 클라이언트가 의뢰한 업무가 법정증거자료로 사용할지 아니면 참고자료로 사용할지 구분할 줄 알아야 하며 사건마다 분석 조사방법 견적서 계약서 조사보고서 등등 기본적인 프로그램과 충분한 경험이 있는 실무프로세스 수준이 전문가 정도는 되어야 한다. 또한 실무자들이 민간조사실무프로세스 강의 할 수 있어야 예비전문가들이 이해하고 수료와 자격취득 후 민간조사분야에서 종사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교육과 자격증을 발급한 기관에서는 허위광고와 허위상담을 통한 불공정거래 위반까지 하는 실정이다. 6. 법안이 통과되면 어떠한 사회에 경제적 효과나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좋은 점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어느 나라던 국가가 국민의 가려움을 다 끍어 줄 순 없다. 또한 OECD 가입국 중 대한민국을 제외한 나라는 대부분 탐정. 민간조사원들이 공권력의 사각지대를 메워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은법제도화의 미비한 결과로 각종 범죄들이 난무하고 지능화 되어가 가족이나 타인의 생명을 담보로 보험금을 노린 보험범죄로 누수되는 금액이 한해 약10조원입니다. 보험범죄를 방치할 경우 보험료도 올라가지만, 모방범죄가 늘어나고 억울한 사건 사고로 이유 없이 사망한 사건들이 발생합니다. 또한 산업기술 유출건과 지식재산권침해로 인한 누수가 전세계적으로 한해 약 320조원 누수되고 있다 합니다. 국가적으로 기업적으로 개인적으로도 Risk가 크며 소송중인사건들을 보면 증거자료가 부족해서 피해자 가해자가 뒤바뀌어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현실에서 많이 발생되고 있지요. 법안이 통과 되면 청년일자리가 최소 5만이상은 창출 될 것이고, 연간 수조원의 경제 활성화를 기대하며 무엇보다 피해자 가해자 뒤바뀌는 억울함을 줄여 나갈 것이며, 국민이 법을 믿고 따르는 환경이 조성 될 것이다. 7.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부탁드립니다. OECD 가입국중 유일하게 대한민국만이 법제도화나 업무를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선진국에서는 검찰 경찰 변호사 등등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사법서비스가 미비해서 탐정. 민간조사업을 허용하거나 법제도화 한 것은 아닙니다. 1999년 16대 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 약20년간 국회에서 논의 했으면 이젠 법무부 경찰청 서로 관리감독하겠다고 힘겨루기 하지말고 이젠 국가와 국민만 생각하는 정부기관으로 거듭나길 바라며, 법제도화 시켜 제1순위로 신직업 민간조사원 일자리로 청년일자리 창출에 효도직업으로 거듭나고 학술적인 연구로 대학교에도 학과가 만들어져 탐정. 민간조사원들이 보다 깊이 있는 전문지식을 익히고 후배들 양성에도 한 몫 할 수 있도록 하루 빨리 법제도화시켜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는 억울함을 줄여 국민이 법을 믿고 따르는 환경을 조성했으면 합니다. 공인탐정 유우종 - 호서대학교 벤처대학원 평교원 FPI탐정.민간조사최고전문가 과정 주임교수 - 한국민간조사중앙회 중앙회장 - 국제사법연대 한국위원장(전) - 경성대, 한세대, 동의대 평교원 “민간조사최고전문가”과정 주임교수(전) - 호주 공인탐정 1호 - 한국교통사고조사학회 이사 - 대한민국 탐정/민간조사교육 최초 - SBS 진실게임 진짜탐정 주인공 유우종 2002 - 탐정학, 탐정/민간조사개론 공저출판 - 건국60주년기념 ‘자랑스런 애국인상 “기장증”(2008년 대한민국건국회) 사건케이스 분야별 해외도피사법 - 기업사기후 해외도피자 소재파악 - 공금횡령 후 여권위조 후 해외도피 소재파악 - 다단계 다수의 피해 후 해외도피자 소재파악 - 토지사기 후 해외도피한 범죄자 소재파악 보험사기 - 보험금 20억원을 노린 보험사기사건 - 온가족 생명을 담보로한 보험사기 - 알바생모집 보험사기 지식재산권침해 - 명품 상표법/디자인등 짝퉁 제조/판매/수입) 이미테이션 조사 짝퉁조사(구찌. 루이통. 샤넬. 비아그라. 이케아. 하얏트 등등) - 불법 프로그램 사용자 서치 - 저작권위반 조사 - 다양한 건설공법 특허 침해 지문현출건 - 터키 300m 선박 (공해상 선장실 금고에서 달러 도난) 용의자 22명 외국인 (사건 현장 지문현출 후 범인1명 서치) - 일본에서 온 협박편지와 소포(협박편지. 부엌칼. 여성속옷. 장남감 손가락5개) 화학기법 분말기법으로 지문현출 범인서치 - 특허기계 제작사기(위조된 서류 설계도30장에서 지문현출) - 오피스텔 사무실 절도사건 지문현출) - 종교단체 목회 협박편지에서 지문 현출 교통사고조사 - 교통사조사 산업도로 6중 충돌사고 사법기관 & 국과수분석을 뒤집은 후 피해자 가해자 뒤바뀐 사건 산업기술유출 사건 - 핸드폰 기술 유출사건 - 텔레콤회사 기술 유출사건 - 건축공법 기술 유출사건 - 기타 특허기술 유출사건
뷰티 크리에이터 김선정 원장 인터뷰 ‘그녀가 말하는 뷰티 이야기’
뷰티 크리에이터 김선정 원장 인터뷰 ‘그녀가 말하는 뷰티 이야기’
질문 1.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홍대에 위치한 토탈 뷰티 살롱 낭만부티크 원장 김선정입니다. 이렇게 인터뷰를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질문 2. 미용을 시작하게 된 계기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초 미술공부를 하고 싶어 부모님께 학원을 보내달라고 했는데 어려서부터 외모 꾸미는걸 좋아하던 저에게 부모님은 아무래도 미용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며 미용 학원을 수강할 수 있도록 해주셨어요. 5살 때 부터 인형머리도 혼자 가위로 많이 자르고, 땋기머리등의 스타일링도 했습니다. 이미 그때부터 제 머리를 스스로 아주 야무지게 묶고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도 고등학교 당시에는 미술을 하고 싶었기에 미용을 권유받고 미용을 하게된 게 싫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고등학교 2학년 2학기때는 담임선생님께서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에 재학중이던 저를 미용 직업 교육학교로 들어가게 해주셔서 미용을 더욱 전문적으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살때 계속 미술을 하고싶었던 저의 오랜 바람을 작용해 시각 디자인학과로 대학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에도 부모님은 미용학과에 진학하길 바라셔서 미용학과로 등록입학금까지 냈었는데 제가 강하게 반발해서 결국 시각디자인과로 입학하게 되었죠. 어려서부터 고집도 세고 하고싶었던것도 확실해 어쩔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각디자인학과에서 공부하고 부전공으로 인물사진을 공부한 저에게 그런 요소들은 현재까지의 저의 미용 인생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고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 졸업식 당일, 저는 졸업식을 마침과 동시에 엄마가 추천하시는 대형 미용실에 입사 면접을 보았고 때 마침 그 미용실에 동시간대에 방문하셨던 배우 조인성씨를 보고 그냥 바로 그 다음주부터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벌써 미용에 입문한지 19년째입니다. 시간 너무 빠르네요. 질문 3. 나만의 뷰티 철학이 있다면 제가 가장 크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로 미용은 두피와 모발 그리고 스킨케어 메이크업 네일 아트 등의 신체의 일부분을 전문적으로 담당하여 단순히 그것을 도구로 외적인 아름다움만을 표현하는 것이 전부가 아닌 우리의 건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사회에 큰 문제로 대두되는 대기오염이나 환경오염으로 파생되는 각종 내분비계 호르몬 질병등이나 생식기 부분의 질병이나 암 , 아토피등의 피부병등이 점점 많아지는 이유도 우리가 평소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생활용품이나 세제, 화장품등 피부에 흡수되는 모든 제품에 들어있는 유해 화학 물질에서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매일같이 피부로 흡수하는 수 많은 유해 화학성분들이 경피로 흡수되어 배출되지않고 우리 혈액을 타고 온몸으로 퍼지며 잔류 됩니다. 따라서 저희 살롱에서 사용하는 샴푸, 트리트먼트, 약제등의 제품들은 살롱 입고시 제가 따로 전 성분을 일일히 까다롭게 따져보고 인체에 유해한 성분으로 사용에 적합하지 않은 제품들의 사용을 최대한 배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시술받으시는 고객님들도 그리고 시술을 하는 저와 우리 직원들도 모두 건강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는 현재 미용실은 전국적으로 12만개가 훨씬 넘고 넘치는 미용실수에 함께 미용인들의 수도 60만명 이상으로 어마어마합니다. 그 중에서도 저는 다른 미용실들과 또는 다른 미용인과 경쟁하지 않고 저 스스로의 한계를 이겨내며 미용에서 아직 개발 되지않은 부분들을 연구하고 일반적으로 시술하기 힘든 아주 까다롭고 다루기 힘든 모발을 시술하는것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고객님들이 기존에 제대로된 시술을 받지못해 금전적, 정신적, 신체적 피해를 입고 극심하게 손상을 관리하지 못하거나, 선천적으로 모발의 성질이 특별해서 일반적인 관리로는 해결하기 힘든 케이스를 갖고 계신 고객님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에 맞는 스스로 새로운 펌 테크닉을 창작하여 만들어 내기도 하고 극심하게 손상된 수차례 반복 탈색머리에 펌을 가능하게 연구 하는가 하면 [탈색모에서도 최고단계의 볼륨과 컬 유지력을 자랑하는 낭만부티크의 마이크로 히피펌] 얼굴과 두상을 성형한듯 보이게 하는 커트 테크닉으로 오직 커트 만으로도 많은 고객님들이 스스로의 장점을 더욱 편하게 부각시켜 스타일링하실 수 있도록 연구합니다. 저는 평소 기존의 탈색약, 염색약을 새롭게 재 해석하여 손상없는 염색을 한다던가 구현하기 힘든 디자인 컬러를 만들어낸다던가 하는 그런 작업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성분에 대한 안전도와 시술의 안전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자연스럽게 시술에 손상도에 대한 염려도 극히 적어 손상 모발에 대한 컨트롤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열심히 연구하는 것을 멈추지 않습니다. [극심한 손상모발에 대한 손상모 클리닉의 전후 비교] 그리고 한달에 두번 정기적인 화보촬영을 통하여 이미 현직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계시는 전문 포토그래퍼와 함께 헤어메이크업 디자인 수준을 더욱 높여 예술적인 디자인을 사진작업을 통해 구현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낭만부티크를 시작하기전 7년간 프리랜서로 방송 및 광고촬영 헤어메이크업 토탈 아티스트로 활동했었기 때문에 사진 작업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낭만부티크의 정기뷰티화보] 질문 4. 낭만부티크에 대해서.. 본래 낭만살롱이라는 이름으로 2013년 6월에 시작되어 2019년 11월에 낭만부티크라는 이름으로 상호를 변경을 하였습니다. 낭만살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같은 이름의 업체들이 전국적으로 생겨나 더욱 유니크하고 프로페셔널함을 지향하기 위해 수년간 낭만살롱으로 사용된 이름을 바꾸는 어려운 선택을 하였습니다. 사실 낭만부티크는 속칭 낭만이들이라고 부르는 저와 직원들을 말합니다. 낭만부티크는 저를 포함한 5명의 낭만이들의 감성이고 영감이며 사랑입니다. 미용일을 직업으로 선택하여 살아가고 있지만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도 나의 인생이고 , 집으로 돌아가서나 쉬는 시간들도 , 모두 나의 인생이기에 함께 살롱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족과 보내는 시간보다도 훨씬 더 긴 시간을 보내는 저희들은 순간 순간을 재미있고 즐겁게 지내려고 하는것이 일반적인 직장과는 가장 다른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낭만부티크의 전경] 가끔 예약이 비어있는 시간에는 브런치도 즐기고 함께 공연이나 영화를 보거나, 해외여행을 가서 그 나라의 지하철을 타고 사람이 많은 곳에 가서 그 나라에서만 느낄 수있는 감성과 헤어스타일을 연구하거나 한국 미용과 접목하여 응용 할 수 있는것을 연구하며 워크샵을 갖습니다. 신기하게도 함께 국내외로 다니며 여행하는것을 모두가 무척 좋아합니다. 다툼이나 싸움이 없이 수년간 함께 해준 낭만이들에게 늘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저의 비전을 모두의 꿈으로 함께 지지해주고 믿어주는 동료들에게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서로가 함께하기에 성장할 수 있어 우리는 서로를 스승으로 생각합니다. 어떻게보면 인터뷰라서 너무 이상적으로 이야기하는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저희를 경험하신 고객님들에게 가장 자주 듣는 칭찬도 ‘서로 사랑하며 함께 하는것이 진정성 있게 느껴져 너무 보기 좋다’고입니다. 이제는 서로가 눈빛만 봐도 미세한 감정까지 느껴질정도로 정말 가족같은 낭만부티크입니다. 그리고 낭만부티크를 찾아주시는 수많은 고객님들도 낭만부티크 존재 자체입니다. 낭만부티크는 살롱이 위치한 서울 홍대는 물론이고 신촌 인근에서부터 가깝게는 경기도 인천 분당, 조금 멀리는 대구, 부산, 제주도, 아주 멀리는 미국 호주 영국 할 것 없이 아주 먼곳에서도 지속적으로 찾아주시는 고객님들이 아주 많습니다. 오로지 저희의 신념과 디자인 기술력을 믿고 멀리서 방문해주시는 고객님들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벅차고 미용을 하기 잘했다는 마음이 듭니다. 최근에는 낭만부티크만의 편안함과 디자인을 좋아해주시는 연예인분들이 많이 찾아주셔셔 함께 재미있는 앨범작업이나 콘서트출장 광고나 화보도 찍게 되고 예능, 방송프로그램과 영화등의 작업등도 활발히 하고있어 매번 정말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낭만부티크와 함께한 작업들] 고객님들의 사랑과 관심으로 본래 소극적이고 자존감이 낮았던 저에게 자존감과 자신감, 미용에 대한 열정을 능동적으로 변화하게 해주신것을 잘 알고있기에 저를 믿고 찾아주시는 모든 고객분들 한분 한분이 정말 늘 소중합니다. 질문 5. 가족과 인생의 가치 2년여의 연애를 하고 지금도 그 사랑이 여전한 사랑꾼 남편과 결혼한지 9년차인 저에게는 두명의 아들이 있습니다. 미용은 일반적으로 근무시간이 길고 노동 강도도 높아 육아와 병행하기 힘들지만 친정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어 두 분이 육아를 도와주시고 너무나 큰 사랑과 배려로 다른 걱정 없이 즐겁게 일할 수 있게 된 환경에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매주 일요일은 낭만부티크의 정기 휴점을 하고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갑니다. 제가 믿는 하나님과 그런 저의 영성과 제가 일하며 살아가는 삶의 태도 등은 모두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며 모든 저의 연약함과 결정 앞에 기도하며 마음의 안식을 찾습니다. 매 순간 만나는 고객님들과 낭만이들과 저의 가족 주변사람들을 모두를 사랑하며 섬기는 것이 저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이며 인생의 이유 자체인 것 같습니다. 질문 6. 뷰티시장의 비전과 방향성 K-Beauty는 이미 아시아 시장에서 뷰티의 기준으로 자리 잡은지 오래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가까운 중국과 일본, 그리고 베트남에서 한국 코스메틱 브랜드의 시장 점유율은 과히 폭발적인 수출 효자 상품입니다. 뷰티 관광을 위해 대한민국을 찾아주시는 발 걸음도 더욱 많아지고 있습니다. 수 개월전부터 저희 낭만부티크에서도 중국어와 영어공부를 하며 보다 더욱 편리하게 외국인 고객들이 이용하실 수 있도록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근래에도 저희살롱에 중국의 최고 인기프로그램의 유명 MC ‘리루얼’님이 헤어스타일링을 상담하고 시술받기 위해 방문하셨습니다. [중국 인기 연예인 리루얼의 방문] 이런 관심과 기대에 부응하기위해 저희살롱에서는 외국인 고객님들에게도 진정성있는 서비스와 최고의 기술력을 제공하기위해 아시아인뿐만 아니라 유럽등의 인종별 모발학과 두피생리학 세계 패션 트렌드등을 연구하며 노력하는것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등이 활성화되면서 전세계에서 k-beauty의 파급력은 가히 어마어마해졌죠 최근 뷰티브랜드들은 ‘유튜브’를 활용한 마케팅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유튜브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어 자연스럽게 유튜브 광고가 큰 효과를 보이고 있으니 뷰티시장은 현재뿐 아니라 앞으로도 꾸준히 유튜브와 SNS를 이용한 마케팅으로 세계인들과 더 긴밀히 소통하고 대한민국의 뷰티 위상을 올리는데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질문 7. 끝맺는말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 같지만 저를 다 꺼내어 표현해 소신을 전달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을것 같아 많이 아쉽습니다. 뷰티 크리에이터라는 주제로 인터뷰 청해 주신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더욱더 멋지게 성장하여 현 시대를 함께하는 선 후배 미용인들에게 좋은 지표와 자극제가 되고 믿고 찾아주시는 고객님들을 위해 진심을 담아 늘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어썸 김민지 CEO "멀티인플루언서가 목표"
어썸 김민지 CEO "멀티인플루언서가 목표"
[사진제공=BNT] 1세대 블로거로 시작해 뷰티전문셀러로 활동하고 있는 어썸판도라 김땡깡(본명 김민지)이 SNS로 활동영역을 확장하며, 블로거 겸 인플루언서로 본격적인 활동을 예고하고 있다. 블로그에서는 닉네임 ‘김땡깡’으로 더욱 유명한 김민지는 2014년부터 블로그를 통해 활동을 하며 6천명 이웃들과 활발한 교류를 지속해온 파워 블로거이자 셀러이다. 블로그를 기반으로 다양한 정보교류와 제품 판매를 진행해온 그녀는 최근 SNS 계정을 개설하며 소통의 창구를 늘려가는 중이다. 스스로를 ‘멀티인플루언서’라고 칭하는 김민지는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속 주인공처럼 쾌활한 웃음과 솔직 담백한 면모가 돋보이는 30대 싱글족이다. 사소한 일상부터 패션, 뷰티, 헬스를 아우르는 정보공유까지 다루는 그야말로 ‘만능카운셀러’다. 10대부터 70대까지 전 연령층과 친분을 쌓아온 특유의 친화력은 블로거 ‘김땡깡’의 전매특허기술. 일하는 재미에 푹 빠져 당분간은 연애도 결혼도 급하지 않다는 블로거 겸 멀티 인플루언서 김민지를 만나 보았다. ▲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30대 싱글족’ 올해 31살의 사업가인 김민지는 블로그 운영 경력 7년 차의 배태랑 ‘뷰티셀러’다. 평소 집에서 강아지와 함께 생활하며 힘을 얻는다는 그는 솔직한 제품리뷰와 일상을 소재로 이웃들과 소통을 시작해, 이제는 직접 고른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20대 때 기내승무원을 준비하면서 ‘어피어런스’에 관심을 갖게 됐고, 자연스럽게 뷰티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지인들에게 전했던 솔직담백한 뷰티정보는 이후 블로그를 통해 입소문을 탔고, 그것이 지금의 ‘어썸판도라’ 김민지를 탄생시킨 히스토리가 됐다. 그는 자신을 여행과 맛집을 좋아하고, 퇴근 후에는 친구들을 만나거나 홈케어에 힘쓰는 ‘평범한 요즘 애들’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일과 공부에 푹 빠져 지내는 ‘노력파’ 인플루언서의 착실함이 엿보인다. ▲ 1:1 뷰티 상담도 마다않는 ‘소통의 달인’ 370만 명의 누적방문자수를 기록 중인 블로그 ‘어썸판도라’는 하나의 독립된 공간으로 성장 중이다. 주로 정보검색을 통해 유입된 이웃들이 하나, 둘 모여 ‘어썸식구’들이 됐다는 것이 김민지의 설명이다. 특유의 털털함과 친화력으로 꾸려진 어썸판도라는 이웃들 사이에서 ‘나만 알고 싶은 블로그’로 통한단다. 때문에 11월부터 시작한 SNS 활동을 못내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많았다고.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어우르는 블로그 성장의 배경에 대해 묻자, 그는 ‘솔직함’과 ‘맞춤상담’을 이유로 손꼽았다. 자세한 정보를 담을 수 있는 블로그의 장점을 적극 활용해 가감 없이 솔직한 생각을 기록해 왔단다. 특히 제품은 1:1 맞춤상담을 통해 사용자의 피부상태에 적합한지 여부를 진단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며 남다른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를 위해 자신이 다루는 모든 제품은 제조사부터 판매사, 성분 하나까지 꼼꼼히 체크하는 것은 기본. 작년에는 서울대 바이오 CEO 과정을 수료하는 등 뷰티 전문가로서의 역량강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고 밝혔다. ▲ 새로운 관심사는 ‘다이어트’와 ‘건강’ ‘인플루언서 어썸판도라’로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김민지의 새로운 관심사는 ‘다이어트’와 ‘건강’이라고 한다. 체지방이 비만 수준인 35%까지 증가하면서 망가진 몸이 쉽게 회복되지 않는 것을 실감한 것이 배경이 됐다. 체중감량보다는 체지방률 25%의 정상범위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라는 그는 건강을 되찾고 탄력 있게 예쁜 몸매를 갖고 싶다며 수줍은 속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건강한 삶’이란 스트레스를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역량과 체력인 것 같다고 설명하는 그는 자신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잠’이라고 밝혔다. 먹고 마시는 ‘먹방’을 사랑하지만 관리를 위해 요즘은 자제하는 중이라는 부연설명도 덧붙였다. ▲ 다이어트 노하우는 ‘식단조절’과 ‘운동’ 본격적인 다이어트를 시작한 김민지의 다이어트는 순항 중이다. 그는 “트레이너가 정해준 식단을 충실히 지키며 체형교정, 홈트레이닝, 실내싸이클, 근력운동을 병행하고 있다”며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또한 “연말이라 식단관리가 어렵다며 치팅데이만 손꼽아 기다린다.(웃음) 결심이 무너질 때마다 바디체크를 하면서 마음을 다잡는다”며 솔직한 속내를 털어 놓기도 했다. 이렇게 조금씩 달라진 그의 모습을 본 어썸판도라 식구들의 반응도 뜨겁다고 한다. 특히 4월 생산을 앞둔 붓기차에 대한 질문이 급증하고 있단다. 주변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헬스케어 노하우를 묻자, 그는 ‘숙면’과 ‘저염식 식단’, ‘반신욕’, ‘따뜻한 차’, 오메가3와 유산균 섭취‘ 등을 꼽았다. 이어서 모든 사람들은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각자의 컨디션에 맞춰,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 SNS는 아직 어색해 … 최종 목표는 ‘멀티인플루언서’ 새롭게 시작하는 SNS 활동에 대해 묻자 “6년 넘게 매일 블로그에 글을 올렸지만, 아직 인스타그램은 좀 어색하다. 인스타그램은 짧은 정보를 간편하게 보여주기 좋은 플랫폼인 것 같더라. 블로그와 다른 점을 알아가며, 솔직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많이 생각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블로그처럼 글을 너무 길에 써서 내용이 짤린 적도 있고, 기능을 잘 몰라서 서툰 모습도 많이 보여드리게 된다. 이런 실수를 귀엽게 봐주시는 인친들에게 감사하고 있다”라며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또한 추후 블로그와 SNS을 동시에 운영하며, 각 플랫폼의 장점을 적극 활용해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싶단다.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친구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며 다방면에서 좋은 정보를 제공하고 양질의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멀티 인플루언서’가 되겠다는 당찬 포부를 들러냈다. 숨가쁜 변화를 시도하며 2020년을 준비 중인 ‘어썸판도라’ 김민지는 오늘도 달린다. 그의 솔직하고 털털한 일상을 한번쯤 눈여겨 봄직하다.
영어교육의 선두주자 김주원 플래너 인터뷰 그녀가 바라보는 영어란?
영어교육의 선두주자 김주원 플래너 인터뷰 그녀가 바라보는 영어란?
Q1. 안녕하셔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셔요? 영어교육 플래너 김주원입니다. 저는 부산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였고, 올해로 15년차 영어교육 플래너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Q2. 영어교육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늘 영어를 붙들고 있었지만 막상 외국인을 만나면 말 한마디 못하는 벙어리가 되는 제가 참 한심했습니다. 진학과 취업을 위해 영어와 싸웠던 학창시절을 돌이켜 보며,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바야흐로 글로벌시대, 전 세계가 하나가 되어 소통하는 디지털시대이고, 하루가 급변하는 시대입니다. 인터넷에 넘쳐나고 있는 정보의 60퍼센트가 영어로 되어 있는데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사이트는 1퍼센트 미만임을 생각할 때, 영어로 소통을 못한다는 것은 과거에 한글을 모르는 까막눈과 다르지 않다는 거죠. 여권 없이 전 세계를 넘나들며 살아갈 제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며, 학문으로서의 영어가 아닌 전 세계 실제 현장에서 소통할 수 있는 실용영어가 절실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Q3. 학문으로서의 영어 vs 소통할 수 있는 영어의 차이 제가 영어를 공부했던 방법은 알파벳을 쓰고, 교과서를 읽고, 영어선생님의 콩글리쉬를 듣는 것이었죠. 외국인이 혀를 굴리며 발음하는 영어듣기평가조차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그러니 영어회화는 꿈도 못 꾸었죠. 대학졸업 후에도 취업을 위해 토익학원에서 정답 고르기 식의 수업만을 듣다보니 점점 영어가 싫어졌죠. 영어는 학문이 아닌 언어가 되어야 합니다. 전 세계에는 어림잡아 230개가 넘는 국가가 존재하고, 100만 명 이상이 사용하는 언어만도 250가지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어떻게 소통할까요? 세계인의 보편적인 공용어, 언어에 있어 플랫폼이 영어인 것이죠. 70억이 사는 전 세계를 무대로 살아갈 우리 아이들에 있어서 영어는 삶의 무대를 확장시키고, 인간관계를 넓히며, 자신의 꿈을 소신껏 키울 수 있는 필수무기인 거죠. Q4. 자녀들의 영어공부에도 신경을 쓰는가? 당연하죠. 영어교육 플래너로 활동하면서 우리 아이들이 영어를 자연스럽게 언어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가 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현재 저는 7살 아들과 5살 딸, 두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두 자녀 모두 영어공부가 아닌 영어학습을 시작해, 화상영어로 원어민과 영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아이가 엄마의 입을 통해 ‘엄마’라는 단어를 6만 번 정도 들으면 ‘엄마’라는 단어를 말할 수 있다고 합니다. 모국어를 익히듯, 원어민에게 영어를 반복적으로 듣고 말하고, 그 이후에 다독을 통해 읽고 쓰기를 가르쳐야 한다는 게 제 영어교육관이며, 지금도 그렇게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Q5. 화상영어를 토대로 교육플랜을 진행하는 특별한 이유는? 어른들보다 아이들은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영어가 재미없는 어른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요. 온라인을 통한 화상수업은 오프라인에서 수업을 하는 것보다 흥미를 유발하는 다양한 자료를 활용함으로써 집중력을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온라인상에서의 그림이나 소리, 혹은 영상을 통해 실제 사물을 보여 주는 수업을 반복함으로써 자연스레 뇌에 스며들 수 있는 직접교수법도 온라인교수법의 큰 장점이죠. 아이들이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을 때까지 각 단계별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지, 원어민 선생님들이 유능하고 객관적으로 검정된 분들인지 잘 체크하신다면, 화상영어를 통한 학습법은 비용대비 효과는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Q6. 영어를 잘하는 방법 제일 좋은 방법은 외국에 나가서 원어민들과 어울려 살며 전투적으로 배우는 거겠죠? 다만 만만치 않은 비용, 조기유학의 여러 문제점들, 그리고 어른들이라면 더더욱 직장과 가정을 두고 외국에 나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과거 10여 년 전보다 현재 어학연수를 떠나는 숫자가 현저히 줄어든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요? 한국에서 영어를 잘하려면 외국과 최대한 비슷한 환경에서 영어를 배우는 것입니다. 일단 모국어에 익숙해진 우리의 귀를 영어에 익숙해지도록 자주 노출시켜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이라면 5세 정도부터가 외국어를 배울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시기입니다. 11세 이후가 되면 우리의 귀는 모국어만 잘 듣도록 특화되어 영어를 소음으로 인지하기 시작한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영어교육을 일찍 시작하고, 어른들은 반복을 통해 귀를 열어야 하는 이유죠. 두 번째는 영어는 영어로 배워야 합니다. 한국말을 잘하는 미국사람보다는 당연히 한국 사람이 한국말을 더 잘하겠죠? 영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덧붙이자면 한국 사람이라고 외국인에게 한국말을 다 잘 가르칠 수 없는 것처럼, 영어교육 관련 자격을 갖춘 자로서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외국인에게 영어를 배운다면 더 잘 배울 수 있겠죠? 영어는 어순, 문화, 사고방식 등이 한국어와는 너무 다릅니다. 1년, 2년 안에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는 조바심보다는 장기적인 시각을 가지고 꾸준히 해나가는 끈기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Q7. 마지막으로 할 이야기 그 동안 영어교육 플래너로 활동하면서 영어가 생존의 무기가 될 어린 친구들, 스트레스를 엄청 받으면서도 영어로 유창한 회화를 하고 싶은 꿈을 가진 성인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교육여건이나 경제사정 등으로 그 꿈을 포기한 상태였죠. 그런데 그들이 저와 함께 화상영어 학습을 하면서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영어 과목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생활 속의 영어를 접하며 수업을 기다리는 것이었죠. 다양한 자료와 아이템으로 유도하는 수업이 흥미로운 것은 물론이고, 예습과 복습을 통한 밀착지도를 통해 차츰 귀와 입이 열리는 걸 보며 학생은 물론 곁에서 보는 저도 보람을 느낀 겁니다. 영어는 성적표가 아니라 자연스런 생활이며, 세상과의 소통이라는 걸 스스로 깨우친 거죠. IT 최대강국인 우리나라가 영어 말하기에선 꼴지 성적표를 가진 게 참으로 아쉽고 부끄럽습니다. 인도인들은 거지도 영어를 유창하게 잘합니다. 영어가 바로 생존무기이기 때문이죠. 머리가 좋기로 일등인 한국인도 세계 어디를 가든 당당하게 자기의사를 표현하며 영어로 시원하게 소통해야 합니다. 이제는 국가 역시 영어가 생존과 발전의 무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대학이나 좋은 직장을 위한 영어가 아니라, 글로벌시대를 준비하는 미래의 인재양성에 이바지하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저는 앞으로도 영어교육 플래너로서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인물인터뷰] 공성민 한국 예술학교장, 그가 걸어온 한국대중음악시장의 길
[인물인터뷰] 공성민 한국 예술학교장, 그가 걸어온 한국대중음악시장의 길
[사진제공=한국예술학교] Q1. 안녕하세요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한국예술학교장 공성민입니다. 저는 기존 아세아고등학교가 2000년도 한국예술고등학교로 교명이 바뀌고 난 뒤부터 교장으로 시작해서 현재까지 운영해오고 오고 있습니다. 2019년 2월까지 기존 마지막 졸업생을 배출하고 전문예술학교 설립을 위해 폐교 과정을 거쳐 2019년 5월에 한국예술학교로 새롭게 인가를 받아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이 학교는 서울시 교육청 평생교육과에 속하며 학교 형태의 평생교육시설이며 저는 현재 그대로 교장직을 맡아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Q2. 교육자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희 선친이 1987년에 아세아 고등학교를 처음 설립하시고 그 학교가 2000년도 한국예술고등학교로 바뀌는 과정을 쭈욱 지켜보면서 선친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선친은 학교의 교육과정을 통해 예술인을 육성하고자 하는 의지로 학교를 운영해 오셨는데 2017년도에 선친이 타계하시고 그 교육에 대한 뜻을 제가 이어 받아서 계속 학교를 운영하고 발전 시켜나가고 있습니다. 선친은 1970년에 공장을 운영하셨는데 공장을 운영하시면서 지방에서 올라와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한 많은 젊은이들에게 낮에는 일을 그리고 밤에는 공부를 가르치셨습니다. 당시 경인재건학교를 설립하셔서 운영하시다가 공장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그 학교를 접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신학교에 들어가시고 목사가 되신 후 교육을 통한 선교를 하 기 위해 본격적인 교육사업을 시작하게 되셨고 이후 1987년 아세아 고등학교를 세우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선친은 외국어 대학교 독어 독문학과를 나와서 교사자격증을 가지고 있으셨고 모친 역시 서울교대 국어 국문학과를 나오셔서 초창기 학교 설립과 운영에 힘을 보태셨습니다. 부모님의 이런 교육에 대한 열정이 저를 교육자의 길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Q3. 한국예술학교 출신 스타들이 많습니다.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2000년도에 예술계 고등학교로 개편되면서 서울시내에서는 처음으로 실용음악을 가르치는 학교가 되었습니다. 특히 클래식과 실용음악을 같이 접목한 학교로 시작해서 당시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처음 학교에서 배출한 연예인으로 원더걸스 선예와 2AM 조권과 2PM 황찬성으로 시작해 방탄소년단의 뷔와 지민, 현아, 워너원 박우진, 시스타 소유 등 수많은 탑스타들을 배출해냈습니다. [사진제공=한국예술학교] Q4. 학교 폐교설이 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까? 선친이 타계 이후 기존의 일반 고등학교 과정에서 있었던 많은 문제점들을 개선해 예술인 특성화 학교로서의 발전을 모색했습니다. 그동안 운영했던 음악, 미술, 연극영화 학과가 이제는 하나의 New K-Culture 학과로 운영해 좀 더 예술 전문적인 학교로 발돋움 하려고 합니다. 기존의 운영방식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검정고시를 통해 학력인정을 받아야 하고 전문 예술과정은 더 자유롭게 강화되었다는 점입니다. 나아가 학생들에게 더 좋은 교육을 제공하고 보다 더 전문적인 예술인으로서의 성장을 위한 지원을 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Q5. 학교자랑 좀 부탁드립니다. 처음 학교에 와보면 건물의 외관이 오래되고 낡아서 실망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내부의 시설은 학생들이 좋아할만한 최고의 시설이라고 자부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서 늘 좋은 선생님들과의 협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늘 좋은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2019년 현재 우리 학교는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기존에 시도되지 않았던 새로운 방식과 눈높이로 학생들과 소통하는 학교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새로운 교육 모델로서 선두로 나아가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예술학교의 슬로건은 “당신의 꿈을 찾아라.”입니다. 제가 평소 좋아하는 말은 “꿈” 과 “비전”입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준비하는 많은 이들에게 한국예술학교는 자신의 꿈을 발견하고 이룰 수 있는 터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Q6. 방탄소년단의 멤버가 두 명이나 졸업한 학교로 유명합니다. 학교 인기는 어떤가요? 수많은 탑 스타들을 졸업시키고 졸업생들 사이에서는 크게 이슈가 되었는지 교문 밖을 나가보면 중국과 일본분들이 많이 와 사진을 찍고 가곤 합니다. 더군다나 방탄소년단이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다보니 해외까지도 이 학교가 많이 유명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탑 연예인들이 졸업했다는 사실을 알고 해외에서도 유학을 많이 오고 있습니다. Q7. 끝으로 하실 말씀 기존 한국예술고등학교가 한국예술학교로 바뀌었습니다. 좀 더 전문적인 예술 학교로서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동안 일반 예술고등학교가 보여준 많은 한계점을 극복하고 예술교육시장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것입니다. 한국의 문화콘텐츠에 세계가 열광하고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시대가 요구하는 모습으로 한국예술학교는 변화 할 것입니다. 그리고 대응할 것입니다. 성원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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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녕하세요. 유우종 교수님 본지 인터뷰에 앞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종손인 아버지는 9남매 형제 중 장남이었고 9번째 막내 삼촌께서 1982년 한여름 밤 12시경 서울 중구 3류급 모 호텔 계단에서 추락사로 사망했다는 사법기관에 사고경위 결과를 통보받고, 그 후 종손이며 장남인 나의 꿈에 피를 흘리며 3개월 정도 나타나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때는 이미 용미리 묘지에 묻힌 상태였다. 그날 추락사한 바로 옆 일미식당에서 친구들과 식사와 술을 곁드린 자리를 하고 친구들은 보낸 후 막내삼촌은 더워서 호텔계단에서 무언가? 생각하며 담배를 피며 쉬고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이 좀 지난 후 식당 다락방에서 잠자던 막내삼촌 손위 삼촌께서 비명소리가 난후 쿵하고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동생이 추락사로 사망했다고 한다. 그 당시 자살할 이유는 없고 열심히 살았다고 한다. 나의 꿈속에 나타나 피를 흘리며 억훌함을 하소연 한 것으로 봐서는 타살 인듯했고 또한 시골 법원주변에서 해결사라는 브로커로 인해 피해자 가해자가 뒤바뀌는 억울함을 당한 농민이 구치소 생활을 하고나오면 술에 연연하다 생을 마감하는 것을 보며 최소한에 피해자 가해자 뒤바뀌는 억울함이 없는 세상을 만들자 라고 1982년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한국판 셜록홈즈 만능인 맥가이버가 나의 우상 이었다. 그때부터 꿈을 향한 공부를 시작했고, 대학교를 졸업 후 사회에서 배울 수 없는 특수교육을 배우고자 “특전사”로 지원입대 특전사 사령부 소속 특수전학교에서 특수전을 가르쳐왔고, 1990년에 전역 후 독일. 호주 등에서 탐정이라 불리는 “민간조사관”교육을 받고 호주 주정부에서 발행하는 공인탐정 자격증을 대한민국1호로 취득했고 또한 2000년부터 대한민국최초로 한국능률협회 사회교육원에서 탐정. 민간조사최고전문가 과정을 실시해왔으며, 그 후 산업인력공단에서도 진행 현재는 한국민간조사중앙회(Pikorea.org)에서 주관하고 호서대학교 벤처대학원 평생교육원에서 “탐정.민간조사최고전문가 과정”을 실시하고 있다. 그는 대한민국 최초로 탐정교육제도를 실시하면서 대한민국 국회에서도 국회의원들을 설득시켜 OECD가입국 중 유일하게 대한민국만 없는 탐정법 이라 불리는 민간조사업법을 대한민국 최초로 “민간조사업법 법 제도화를 위한 공청회”를 많은 국회의원의 힘을 빌려 대한민국 최초로 법 제도화에 시동을 걸었으며, 또한 국민과 정부기관에도 필요성을 알리고 방송 . 신문등 수많은 언론을 통한 노력한 결과 현재는 경찰청 법무부 서로 관리 감독한다는 이유로 법제도화가 늦어지고 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변호사협회에서 사생활침해나 개인정보 난발 문제로 반대를 하는 목소리를 하는 바람에 법제도화가 늦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변호사협회에서는 민간조사업법 및 민간조사분야를 깊이있게 들여다보면, 그런 목소리를 내지 않을 것이다. “민간조사원” 민간조사업법이 법제도화 된다해도 사생활침해나 개인정보를 난발할 수 없다. 오히려 음지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을 관리 감독할 수 있을 것이다. 법제도화가 잘되어 있는 독일이나 호주 미국 등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엄격하다 한다. 민간조사원은 법정 증거자료나 사실여부 조사 시 사건의 사실그대로 조사할 때 사생활 침해나 주거지침해를 해서도 않되며, 공공장소에서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 비디오 사진 방법으로 촬영 기록한 것을 법원에서 인정한다. 호주 민간조사관 경우 조사업무시 조작이나 변조 허위증거자료 조사보고서를 법원에 제출 시 당사자는 면허기 취소되고 몰론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하며, 보증인 3명에게도 민사적인 책임을 진다. 2. 호주 공인탐정을 취득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십시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는 최초로 호주공인탄정1호 유우종 회장은 한국에 탐정.민간조사업법을 법제도화하고 PI교육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전락으로 PI제도가 선진화된 나라 중 가장 잘되어 있는 나라에 가서 연수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는 영국이나 일본등은 민간자격이 있고 독일도 가서보니 좀 미숙한 분분이 많았고, 그래도 호주 퀸즐렌즈주에서 인정하는 Schppl에서 공부를 했고, 교육은 주정부 메뉴얼대로 진행 하며 PI3급 과 PI4급이있으며, 최고높은 PI4를 취덕했다. PI4를 취덕 시 한국사람 중 1년이상 알고지낸 사람을 3명을 보증인으로 세워야 하며 1년또는 3년마다 세금을 내야만 호주에서 PI업무를 할 수 있다. 민간조사관 PI4네밸위에는 Diplomar는 티처과정이 있다. Diplomar는 지도자 또는 선생님 자격으로 보면된다. 호주 주정부에서는 Diplomar에게 권한을 준다. 다만 주정부에서 정하는 Program대로 가르쳐야 한다. 간략하게 말하면 PI Diplomar는 정해진 Program으로 예비PI들에게 가르치고 자격검정을 할 때 모든 기록은(비디오. 사진) 아날로그 방식으로 촬영기록 해야만 하며, 이론과 현장실무수업과 자격검증 역시 아나로그방식으로 기록하며, 수업과 자격검정 모든 자료를 주정부에 첨부하며 주정부는 평가 검정하여 3개월 안에 각 나라에 있는 PI합격자에게 증서와 PI Licence를 부여한다. 독일 호주 미국 일본 등등 연수와 초청해서 연구한 결과 호주 PI Licence 제도가 가장 잘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3. 한국사회에 아직 탐정이라는 인식이 낮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십시오. 한국에서는 탐정이라는 단어가 정착할 수가 없다. 1999년 전 한나라당 하순봉 국회의원 보좌관 정순훈 보좌관과“공인탐정” 법안을 만들었다. 정보좌관께서 공청회를 하고 법안을 발의하자고 했을 때 저는 반대했다. 왜냐하면 탐정이라는 뜻은 국민들에게 해결사 사생활침해 뒷조사 간첩 정탐꾼 등등 아주 부정적이기에 이것을 바꾼다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 보다 어렵다는 것을 유우종 회장은 주장 했다. 또한 국어 사전에도 보면 “탐정”훔쳐보다, 엿보다, 간첩행위, 사생활침해, 등등 아주 부정적이며 탐정 드라마나 영화를 보더라도 불법행위가 약 70%를 차지한다. 그래서 유우종 회장이 반대하는 바람에 공청회를 하지 못하고, 17대국회로 넘어 갔다. 이상배 국회의원을 설득하여 2005년 8월 29일 대한민국 최초로 민간조사업법 법 제도화를 위한 공청회를 국회 도서관 대회의실에서 실시했으며, 그 후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님께서도 발의를 했고, 18대국회 19대국회 20대 국회에서 지속적으로 법 제도화를 위한 노력을 해왔다. 결국은 국민은 뒷전이고 관리관청 문제로 늦어지고 있다. 민간조사업법이 법제화 되면 전문가적인 수준 연수와 엄격한 자격검정관리 또한 중요하며, 단 한번이라도 불법이나 법을 위반 시 PI Licence가 취소된다는 인식을 주어야하며, PI Licence발급 시 책임보험제도와 보증인을 1명을 안전장치 하는것이 바람직하며, 업무 조작이나 허위일 경우 단1회 라도 자격증(PI Licence) 박탈 및 보증인에게 민사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 4. 현재 법안에 계류중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언제쯤 보편화가 될까요? 민간조사업법이 대한민국최초로 2005년 8월 29일 국회에서 파종이되었으나 ,경찰청과 법무부가 서로관리 하겠다고 힘겨루기 하는 것과 변호사협회에서 반대하는 문제로 지연되었다가 17대 18대 19대 국회에서 회계만료로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서도 발의했고, 문정부에서도 국정과제로 제도화한다고는 하지만 20대 국회에서도 오리무중이다 아마도 21대 국회에는 좋은 결실이 있을듯 합니다. 5. 한국사회에 탐정자격증이라는 민간자격증이 많이들 있습니다. 모두다 같은 것인가요? 현재 탐정과 민간조사라는 명분으로 자격증이 발급하고는 있으나, 각자 마인드가 달라서 수준이 천차만별이다. 그래도 최대한 민간조사원이란 어떠한 직업 업무인지 왜필요한지, 조사 시 클라이언트가 의뢰한 업무가 법정증거자료로 사용할지 아니면 참고자료로 사용할지 구분할 줄 알아야 하며 사건마다 분석 조사방법 견적서 계약서 조사보고서 등등 기본적인 프로그램과 충분한 경험이 있는 실무프로세스 수준이 전문가 정도는 되어야 한다. 또한 실무자들이 민간조사실무프로세스 강의 할 수 있어야 예비전문가들이 이해하고 수료와 자격취득 후 민간조사분야에서 종사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교육과 자격증을 발급한 기관에서는 허위광고와 허위상담을 통한 불공정거래 위반까지 하는 실정이다. 6. 법안이 통과되면 어떠한 사회에 경제적 효과나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좋은 점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어느 나라던 국가가 국민의 가려움을 다 끍어 줄 순 없다. 또한 OECD 가입국 중 대한민국을 제외한 나라는 대부분 탐정. 민간조사원들이 공권력의 사각지대를 메워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은법제도화의 미비한 결과로 각종 범죄들이 난무하고 지능화 되어가 가족이나 타인의 생명을 담보로 보험금을 노린 보험범죄로 누수되는 금액이 한해 약10조원입니다. 보험범죄를 방치할 경우 보험료도 올라가지만, 모방범죄가 늘어나고 억울한 사건 사고로 이유 없이 사망한 사건들이 발생합니다. 또한 산업기술 유출건과 지식재산권침해로 인한 누수가 전세계적으로 한해 약 320조원 누수되고 있다 합니다. 국가적으로 기업적으로 개인적으로도 Risk가 크며 소송중인사건들을 보면 증거자료가 부족해서 피해자 가해자가 뒤바뀌어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현실에서 많이 발생되고 있지요. 법안이 통과 되면 청년일자리가 최소 5만이상은 창출 될 것이고, 연간 수조원의 경제 활성화를 기대하며 무엇보다 피해자 가해자 뒤바뀌는 억울함을 줄여 나갈 것이며, 국민이 법을 믿고 따르는 환경이 조성 될 것이다. 7.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부탁드립니다. OECD 가입국중 유일하게 대한민국만이 법제도화나 업무를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선진국에서는 검찰 경찰 변호사 등등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사법서비스가 미비해서 탐정. 민간조사업을 허용하거나 법제도화 한 것은 아닙니다. 1999년 16대 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 약20년간 국회에서 논의 했으면 이젠 법무부 경찰청 서로 관리감독하겠다고 힘겨루기 하지말고 이젠 국가와 국민만 생각하는 정부기관으로 거듭나길 바라며, 법제도화 시켜 제1순위로 신직업 민간조사원 일자리로 청년일자리 창출에 효도직업으로 거듭나고 학술적인 연구로 대학교에도 학과가 만들어져 탐정. 민간조사원들이 보다 깊이 있는 전문지식을 익히고 후배들 양성에도 한 몫 할 수 있도록 하루 빨리 법제도화시켜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는 억울함을 줄여 국민이 법을 믿고 따르는 환경을 조성했으면 합니다. 공인탐정 유우종 - 호서대학교 벤처대학원 평교원 FPI탐정.민간조사최고전문가 과정 주임교수 - 한국민간조사중앙회 중앙회장 - 국제사법연대 한국위원장(전) - 경성대, 한세대, 동의대 평교원 “민간조사최고전문가”과정 주임교수(전) - 호주 공인탐정 1호 - 한국교통사고조사학회 이사 - 대한민국 탐정/민간조사교육 최초 - SBS 진실게임 진짜탐정 주인공 유우종 2002 - 탐정학, 탐정/민간조사개론 공저출판 - 건국60주년기념 ‘자랑스런 애국인상 “기장증”(2008년 대한민국건국회) 사건케이스 분야별 해외도피사법 - 기업사기후 해외도피자 소재파악 - 공금횡령 후 여권위조 후 해외도피 소재파악 - 다단계 다수의 피해 후 해외도피자 소재파악 - 토지사기 후 해외도피한 범죄자 소재파악 보험사기 - 보험금 20억원을 노린 보험사기사건 - 온가족 생명을 담보로한 보험사기 - 알바생모집 보험사기 지식재산권침해 - 명품 상표법/디자인등 짝퉁 제조/판매/수입) 이미테이션 조사 짝퉁조사(구찌. 루이통. 샤넬. 비아그라. 이케아. 하얏트 등등) - 불법 프로그램 사용자 서치 - 저작권위반 조사 - 다양한 건설공법 특허 침해 지문현출건 - 터키 300m 선박 (공해상 선장실 금고에서 달러 도난) 용의자 22명 외국인 (사건 현장 지문현출 후 범인1명 서치) - 일본에서 온 협박편지와 소포(협박편지. 부엌칼. 여성속옷. 장남감 손가락5개) 화학기법 분말기법으로 지문현출 범인서치 - 특허기계 제작사기(위조된 서류 설계도30장에서 지문현출) - 오피스텔 사무실 절도사건 지문현출) - 종교단체 목회 협박편지에서 지문 현출 교통사고조사 - 교통사조사 산업도로 6중 충돌사고 사법기관 & 국과수분석을 뒤집은 후 피해자 가해자 뒤바뀐 사건 산업기술유출 사건 - 핸드폰 기술 유출사건 - 텔레콤회사 기술 유출사건 - 건축공법 기술 유출사건 - 기타 특허기술 유출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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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 크리에이터 김선정 원장 인터뷰 ‘그녀가 말하는 뷰티 이야기’
뷰티 크리에이터 김선정 원장 인터뷰 ‘그녀가 말하는 뷰티 이야기’
질문 1.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홍대에 위치한 토탈 뷰티 살롱 낭만부티크 원장 김선정입니다. 이렇게 인터뷰를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질문 2. 미용을 시작하게 된 계기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초 미술공부를 하고 싶어 부모님께 학원을 보내달라고 했는데 어려서부터 외모 꾸미는걸 좋아하던 저에게 부모님은 아무래도 미용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며 미용 학원을 수강할 수 있도록 해주셨어요. 5살 때 부터 인형머리도 혼자 가위로 많이 자르고, 땋기머리등의 스타일링도 했습니다. 이미 그때부터 제 머리를 스스로 아주 야무지게 묶고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도 고등학교 당시에는 미술을 하고 싶었기에 미용을 권유받고 미용을 하게된 게 싫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고등학교 2학년 2학기때는 담임선생님께서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에 재학중이던 저를 미용 직업 교육학교로 들어가게 해주셔서 미용을 더욱 전문적으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살때 계속 미술을 하고싶었던 저의 오랜 바람을 작용해 시각 디자인학과로 대학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에도 부모님은 미용학과에 진학하길 바라셔서 미용학과로 등록입학금까지 냈었는데 제가 강하게 반발해서 결국 시각디자인과로 입학하게 되었죠. 어려서부터 고집도 세고 하고싶었던것도 확실해 어쩔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각디자인학과에서 공부하고 부전공으로 인물사진을 공부한 저에게 그런 요소들은 현재까지의 저의 미용 인생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고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 졸업식 당일, 저는 졸업식을 마침과 동시에 엄마가 추천하시는 대형 미용실에 입사 면접을 보았고 때 마침 그 미용실에 동시간대에 방문하셨던 배우 조인성씨를 보고 그냥 바로 그 다음주부터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벌써 미용에 입문한지 19년째입니다. 시간 너무 빠르네요. 질문 3. 나만의 뷰티 철학이 있다면 제가 가장 크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로 미용은 두피와 모발 그리고 스킨케어 메이크업 네일 아트 등의 신체의 일부분을 전문적으로 담당하여 단순히 그것을 도구로 외적인 아름다움만을 표현하는 것이 전부가 아닌 우리의 건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사회에 큰 문제로 대두되는 대기오염이나 환경오염으로 파생되는 각종 내분비계 호르몬 질병등이나 생식기 부분의 질병이나 암 , 아토피등의 피부병등이 점점 많아지는 이유도 우리가 평소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생활용품이나 세제, 화장품등 피부에 흡수되는 모든 제품에 들어있는 유해 화학 물질에서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매일같이 피부로 흡수하는 수 많은 유해 화학성분들이 경피로 흡수되어 배출되지않고 우리 혈액을 타고 온몸으로 퍼지며 잔류 됩니다. 따라서 저희 살롱에서 사용하는 샴푸, 트리트먼트, 약제등의 제품들은 살롱 입고시 제가 따로 전 성분을 일일히 까다롭게 따져보고 인체에 유해한 성분으로 사용에 적합하지 않은 제품들의 사용을 최대한 배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시술받으시는 고객님들도 그리고 시술을 하는 저와 우리 직원들도 모두 건강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는 현재 미용실은 전국적으로 12만개가 훨씬 넘고 넘치는 미용실수에 함께 미용인들의 수도 60만명 이상으로 어마어마합니다. 그 중에서도 저는 다른 미용실들과 또는 다른 미용인과 경쟁하지 않고 저 스스로의 한계를 이겨내며 미용에서 아직 개발 되지않은 부분들을 연구하고 일반적으로 시술하기 힘든 아주 까다롭고 다루기 힘든 모발을 시술하는것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고객님들이 기존에 제대로된 시술을 받지못해 금전적, 정신적, 신체적 피해를 입고 극심하게 손상을 관리하지 못하거나, 선천적으로 모발의 성질이 특별해서 일반적인 관리로는 해결하기 힘든 케이스를 갖고 계신 고객님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에 맞는 스스로 새로운 펌 테크닉을 창작하여 만들어 내기도 하고 극심하게 손상된 수차례 반복 탈색머리에 펌을 가능하게 연구 하는가 하면 [탈색모에서도 최고단계의 볼륨과 컬 유지력을 자랑하는 낭만부티크의 마이크로 히피펌] 얼굴과 두상을 성형한듯 보이게 하는 커트 테크닉으로 오직 커트 만으로도 많은 고객님들이 스스로의 장점을 더욱 편하게 부각시켜 스타일링하실 수 있도록 연구합니다. 저는 평소 기존의 탈색약, 염색약을 새롭게 재 해석하여 손상없는 염색을 한다던가 구현하기 힘든 디자인 컬러를 만들어낸다던가 하는 그런 작업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성분에 대한 안전도와 시술의 안전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자연스럽게 시술에 손상도에 대한 염려도 극히 적어 손상 모발에 대한 컨트롤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열심히 연구하는 것을 멈추지 않습니다. [극심한 손상모발에 대한 손상모 클리닉의 전후 비교] 그리고 한달에 두번 정기적인 화보촬영을 통하여 이미 현직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계시는 전문 포토그래퍼와 함께 헤어메이크업 디자인 수준을 더욱 높여 예술적인 디자인을 사진작업을 통해 구현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낭만부티크를 시작하기전 7년간 프리랜서로 방송 및 광고촬영 헤어메이크업 토탈 아티스트로 활동했었기 때문에 사진 작업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낭만부티크의 정기뷰티화보] 질문 4. 낭만부티크에 대해서.. 본래 낭만살롱이라는 이름으로 2013년 6월에 시작되어 2019년 11월에 낭만부티크라는 이름으로 상호를 변경을 하였습니다. 낭만살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같은 이름의 업체들이 전국적으로 생겨나 더욱 유니크하고 프로페셔널함을 지향하기 위해 수년간 낭만살롱으로 사용된 이름을 바꾸는 어려운 선택을 하였습니다. 사실 낭만부티크는 속칭 낭만이들이라고 부르는 저와 직원들을 말합니다. 낭만부티크는 저를 포함한 5명의 낭만이들의 감성이고 영감이며 사랑입니다. 미용일을 직업으로 선택하여 살아가고 있지만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도 나의 인생이고 , 집으로 돌아가서나 쉬는 시간들도 , 모두 나의 인생이기에 함께 살롱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족과 보내는 시간보다도 훨씬 더 긴 시간을 보내는 저희들은 순간 순간을 재미있고 즐겁게 지내려고 하는것이 일반적인 직장과는 가장 다른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낭만부티크의 전경] 가끔 예약이 비어있는 시간에는 브런치도 즐기고 함께 공연이나 영화를 보거나, 해외여행을 가서 그 나라의 지하철을 타고 사람이 많은 곳에 가서 그 나라에서만 느낄 수있는 감성과 헤어스타일을 연구하거나 한국 미용과 접목하여 응용 할 수 있는것을 연구하며 워크샵을 갖습니다. 신기하게도 함께 국내외로 다니며 여행하는것을 모두가 무척 좋아합니다. 다툼이나 싸움이 없이 수년간 함께 해준 낭만이들에게 늘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저의 비전을 모두의 꿈으로 함께 지지해주고 믿어주는 동료들에게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서로가 함께하기에 성장할 수 있어 우리는 서로를 스승으로 생각합니다. 어떻게보면 인터뷰라서 너무 이상적으로 이야기하는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저희를 경험하신 고객님들에게 가장 자주 듣는 칭찬도 ‘서로 사랑하며 함께 하는것이 진정성 있게 느껴져 너무 보기 좋다’고입니다. 이제는 서로가 눈빛만 봐도 미세한 감정까지 느껴질정도로 정말 가족같은 낭만부티크입니다. 그리고 낭만부티크를 찾아주시는 수많은 고객님들도 낭만부티크 존재 자체입니다. 낭만부티크는 살롱이 위치한 서울 홍대는 물론이고 신촌 인근에서부터 가깝게는 경기도 인천 분당, 조금 멀리는 대구, 부산, 제주도, 아주 멀리는 미국 호주 영국 할 것 없이 아주 먼곳에서도 지속적으로 찾아주시는 고객님들이 아주 많습니다. 오로지 저희의 신념과 디자인 기술력을 믿고 멀리서 방문해주시는 고객님들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벅차고 미용을 하기 잘했다는 마음이 듭니다. 최근에는 낭만부티크만의 편안함과 디자인을 좋아해주시는 연예인분들이 많이 찾아주셔셔 함께 재미있는 앨범작업이나 콘서트출장 광고나 화보도 찍게 되고 예능, 방송프로그램과 영화등의 작업등도 활발히 하고있어 매번 정말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낭만부티크와 함께한 작업들] 고객님들의 사랑과 관심으로 본래 소극적이고 자존감이 낮았던 저에게 자존감과 자신감, 미용에 대한 열정을 능동적으로 변화하게 해주신것을 잘 알고있기에 저를 믿고 찾아주시는 모든 고객분들 한분 한분이 정말 늘 소중합니다. 질문 5. 가족과 인생의 가치 2년여의 연애를 하고 지금도 그 사랑이 여전한 사랑꾼 남편과 결혼한지 9년차인 저에게는 두명의 아들이 있습니다. 미용은 일반적으로 근무시간이 길고 노동 강도도 높아 육아와 병행하기 힘들지만 친정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어 두 분이 육아를 도와주시고 너무나 큰 사랑과 배려로 다른 걱정 없이 즐겁게 일할 수 있게 된 환경에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매주 일요일은 낭만부티크의 정기 휴점을 하고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갑니다. 제가 믿는 하나님과 그런 저의 영성과 제가 일하며 살아가는 삶의 태도 등은 모두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며 모든 저의 연약함과 결정 앞에 기도하며 마음의 안식을 찾습니다. 매 순간 만나는 고객님들과 낭만이들과 저의 가족 주변사람들을 모두를 사랑하며 섬기는 것이 저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이며 인생의 이유 자체인 것 같습니다. 질문 6. 뷰티시장의 비전과 방향성 K-Beauty는 이미 아시아 시장에서 뷰티의 기준으로 자리 잡은지 오래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가까운 중국과 일본, 그리고 베트남에서 한국 코스메틱 브랜드의 시장 점유율은 과히 폭발적인 수출 효자 상품입니다. 뷰티 관광을 위해 대한민국을 찾아주시는 발 걸음도 더욱 많아지고 있습니다. 수 개월전부터 저희 낭만부티크에서도 중국어와 영어공부를 하며 보다 더욱 편리하게 외국인 고객들이 이용하실 수 있도록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근래에도 저희살롱에 중국의 최고 인기프로그램의 유명 MC ‘리루얼’님이 헤어스타일링을 상담하고 시술받기 위해 방문하셨습니다. [중국 인기 연예인 리루얼의 방문] 이런 관심과 기대에 부응하기위해 저희살롱에서는 외국인 고객님들에게도 진정성있는 서비스와 최고의 기술력을 제공하기위해 아시아인뿐만 아니라 유럽등의 인종별 모발학과 두피생리학 세계 패션 트렌드등을 연구하며 노력하는것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등이 활성화되면서 전세계에서 k-beauty의 파급력은 가히 어마어마해졌죠 최근 뷰티브랜드들은 ‘유튜브’를 활용한 마케팅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유튜브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어 자연스럽게 유튜브 광고가 큰 효과를 보이고 있으니 뷰티시장은 현재뿐 아니라 앞으로도 꾸준히 유튜브와 SNS를 이용한 마케팅으로 세계인들과 더 긴밀히 소통하고 대한민국의 뷰티 위상을 올리는데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질문 7. 끝맺는말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 같지만 저를 다 꺼내어 표현해 소신을 전달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을것 같아 많이 아쉽습니다. 뷰티 크리에이터라는 주제로 인터뷰 청해 주신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더욱더 멋지게 성장하여 현 시대를 함께하는 선 후배 미용인들에게 좋은 지표와 자극제가 되고 믿고 찾아주시는 고객님들을 위해 진심을 담아 늘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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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썸 김민지 CEO "멀티인플루언서가 목표"
어썸 김민지 CEO "멀티인플루언서가 목표"
[사진제공=BNT] 1세대 블로거로 시작해 뷰티전문셀러로 활동하고 있는 어썸판도라 김땡깡(본명 김민지)이 SNS로 활동영역을 확장하며, 블로거 겸 인플루언서로 본격적인 활동을 예고하고 있다. 블로그에서는 닉네임 ‘김땡깡’으로 더욱 유명한 김민지는 2014년부터 블로그를 통해 활동을 하며 6천명 이웃들과 활발한 교류를 지속해온 파워 블로거이자 셀러이다. 블로그를 기반으로 다양한 정보교류와 제품 판매를 진행해온 그녀는 최근 SNS 계정을 개설하며 소통의 창구를 늘려가는 중이다. 스스로를 ‘멀티인플루언서’라고 칭하는 김민지는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속 주인공처럼 쾌활한 웃음과 솔직 담백한 면모가 돋보이는 30대 싱글족이다. 사소한 일상부터 패션, 뷰티, 헬스를 아우르는 정보공유까지 다루는 그야말로 ‘만능카운셀러’다. 10대부터 70대까지 전 연령층과 친분을 쌓아온 특유의 친화력은 블로거 ‘김땡깡’의 전매특허기술. 일하는 재미에 푹 빠져 당분간은 연애도 결혼도 급하지 않다는 블로거 겸 멀티 인플루언서 김민지를 만나 보았다. ▲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30대 싱글족’ 올해 31살의 사업가인 김민지는 블로그 운영 경력 7년 차의 배태랑 ‘뷰티셀러’다. 평소 집에서 강아지와 함께 생활하며 힘을 얻는다는 그는 솔직한 제품리뷰와 일상을 소재로 이웃들과 소통을 시작해, 이제는 직접 고른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20대 때 기내승무원을 준비하면서 ‘어피어런스’에 관심을 갖게 됐고, 자연스럽게 뷰티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지인들에게 전했던 솔직담백한 뷰티정보는 이후 블로그를 통해 입소문을 탔고, 그것이 지금의 ‘어썸판도라’ 김민지를 탄생시킨 히스토리가 됐다. 그는 자신을 여행과 맛집을 좋아하고, 퇴근 후에는 친구들을 만나거나 홈케어에 힘쓰는 ‘평범한 요즘 애들’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일과 공부에 푹 빠져 지내는 ‘노력파’ 인플루언서의 착실함이 엿보인다. ▲ 1:1 뷰티 상담도 마다않는 ‘소통의 달인’ 370만 명의 누적방문자수를 기록 중인 블로그 ‘어썸판도라’는 하나의 독립된 공간으로 성장 중이다. 주로 정보검색을 통해 유입된 이웃들이 하나, 둘 모여 ‘어썸식구’들이 됐다는 것이 김민지의 설명이다. 특유의 털털함과 친화력으로 꾸려진 어썸판도라는 이웃들 사이에서 ‘나만 알고 싶은 블로그’로 통한단다. 때문에 11월부터 시작한 SNS 활동을 못내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많았다고.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어우르는 블로그 성장의 배경에 대해 묻자, 그는 ‘솔직함’과 ‘맞춤상담’을 이유로 손꼽았다. 자세한 정보를 담을 수 있는 블로그의 장점을 적극 활용해 가감 없이 솔직한 생각을 기록해 왔단다. 특히 제품은 1:1 맞춤상담을 통해 사용자의 피부상태에 적합한지 여부를 진단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며 남다른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를 위해 자신이 다루는 모든 제품은 제조사부터 판매사, 성분 하나까지 꼼꼼히 체크하는 것은 기본. 작년에는 서울대 바이오 CEO 과정을 수료하는 등 뷰티 전문가로서의 역량강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고 밝혔다. ▲ 새로운 관심사는 ‘다이어트’와 ‘건강’ ‘인플루언서 어썸판도라’로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김민지의 새로운 관심사는 ‘다이어트’와 ‘건강’이라고 한다. 체지방이 비만 수준인 35%까지 증가하면서 망가진 몸이 쉽게 회복되지 않는 것을 실감한 것이 배경이 됐다. 체중감량보다는 체지방률 25%의 정상범위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라는 그는 건강을 되찾고 탄력 있게 예쁜 몸매를 갖고 싶다며 수줍은 속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건강한 삶’이란 스트레스를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역량과 체력인 것 같다고 설명하는 그는 자신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잠’이라고 밝혔다. 먹고 마시는 ‘먹방’을 사랑하지만 관리를 위해 요즘은 자제하는 중이라는 부연설명도 덧붙였다. ▲ 다이어트 노하우는 ‘식단조절’과 ‘운동’ 본격적인 다이어트를 시작한 김민지의 다이어트는 순항 중이다. 그는 “트레이너가 정해준 식단을 충실히 지키며 체형교정, 홈트레이닝, 실내싸이클, 근력운동을 병행하고 있다”며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또한 “연말이라 식단관리가 어렵다며 치팅데이만 손꼽아 기다린다.(웃음) 결심이 무너질 때마다 바디체크를 하면서 마음을 다잡는다”며 솔직한 속내를 털어 놓기도 했다. 이렇게 조금씩 달라진 그의 모습을 본 어썸판도라 식구들의 반응도 뜨겁다고 한다. 특히 4월 생산을 앞둔 붓기차에 대한 질문이 급증하고 있단다. 주변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헬스케어 노하우를 묻자, 그는 ‘숙면’과 ‘저염식 식단’, ‘반신욕’, ‘따뜻한 차’, 오메가3와 유산균 섭취‘ 등을 꼽았다. 이어서 모든 사람들은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각자의 컨디션에 맞춰,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 SNS는 아직 어색해 … 최종 목표는 ‘멀티인플루언서’ 새롭게 시작하는 SNS 활동에 대해 묻자 “6년 넘게 매일 블로그에 글을 올렸지만, 아직 인스타그램은 좀 어색하다. 인스타그램은 짧은 정보를 간편하게 보여주기 좋은 플랫폼인 것 같더라. 블로그와 다른 점을 알아가며, 솔직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많이 생각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블로그처럼 글을 너무 길에 써서 내용이 짤린 적도 있고, 기능을 잘 몰라서 서툰 모습도 많이 보여드리게 된다. 이런 실수를 귀엽게 봐주시는 인친들에게 감사하고 있다”라며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또한 추후 블로그와 SNS을 동시에 운영하며, 각 플랫폼의 장점을 적극 활용해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싶단다.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친구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며 다방면에서 좋은 정보를 제공하고 양질의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멀티 인플루언서’가 되겠다는 당찬 포부를 들러냈다. 숨가쁜 변화를 시도하며 2020년을 준비 중인 ‘어썸판도라’ 김민지는 오늘도 달린다. 그의 솔직하고 털털한 일상을 한번쯤 눈여겨 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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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교육의 선두주자 김주원 플래너 인터뷰 그녀가 바라보는 영어란?
영어교육의 선두주자 김주원 플래너 인터뷰 그녀가 바라보는 영어란?
Q1. 안녕하셔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셔요? 영어교육 플래너 김주원입니다. 저는 부산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였고, 올해로 15년차 영어교육 플래너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Q2. 영어교육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늘 영어를 붙들고 있었지만 막상 외국인을 만나면 말 한마디 못하는 벙어리가 되는 제가 참 한심했습니다. 진학과 취업을 위해 영어와 싸웠던 학창시절을 돌이켜 보며,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바야흐로 글로벌시대, 전 세계가 하나가 되어 소통하는 디지털시대이고, 하루가 급변하는 시대입니다. 인터넷에 넘쳐나고 있는 정보의 60퍼센트가 영어로 되어 있는데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사이트는 1퍼센트 미만임을 생각할 때, 영어로 소통을 못한다는 것은 과거에 한글을 모르는 까막눈과 다르지 않다는 거죠. 여권 없이 전 세계를 넘나들며 살아갈 제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며, 학문으로서의 영어가 아닌 전 세계 실제 현장에서 소통할 수 있는 실용영어가 절실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Q3. 학문으로서의 영어 vs 소통할 수 있는 영어의 차이 제가 영어를 공부했던 방법은 알파벳을 쓰고, 교과서를 읽고, 영어선생님의 콩글리쉬를 듣는 것이었죠. 외국인이 혀를 굴리며 발음하는 영어듣기평가조차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그러니 영어회화는 꿈도 못 꾸었죠. 대학졸업 후에도 취업을 위해 토익학원에서 정답 고르기 식의 수업만을 듣다보니 점점 영어가 싫어졌죠. 영어는 학문이 아닌 언어가 되어야 합니다. 전 세계에는 어림잡아 230개가 넘는 국가가 존재하고, 100만 명 이상이 사용하는 언어만도 250가지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어떻게 소통할까요? 세계인의 보편적인 공용어, 언어에 있어 플랫폼이 영어인 것이죠. 70억이 사는 전 세계를 무대로 살아갈 우리 아이들에 있어서 영어는 삶의 무대를 확장시키고, 인간관계를 넓히며, 자신의 꿈을 소신껏 키울 수 있는 필수무기인 거죠. Q4. 자녀들의 영어공부에도 신경을 쓰는가? 당연하죠. 영어교육 플래너로 활동하면서 우리 아이들이 영어를 자연스럽게 언어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가 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현재 저는 7살 아들과 5살 딸, 두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두 자녀 모두 영어공부가 아닌 영어학습을 시작해, 화상영어로 원어민과 영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아이가 엄마의 입을 통해 ‘엄마’라는 단어를 6만 번 정도 들으면 ‘엄마’라는 단어를 말할 수 있다고 합니다. 모국어를 익히듯, 원어민에게 영어를 반복적으로 듣고 말하고, 그 이후에 다독을 통해 읽고 쓰기를 가르쳐야 한다는 게 제 영어교육관이며, 지금도 그렇게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Q5. 화상영어를 토대로 교육플랜을 진행하는 특별한 이유는? 어른들보다 아이들은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영어가 재미없는 어른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요. 온라인을 통한 화상수업은 오프라인에서 수업을 하는 것보다 흥미를 유발하는 다양한 자료를 활용함으로써 집중력을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온라인상에서의 그림이나 소리, 혹은 영상을 통해 실제 사물을 보여 주는 수업을 반복함으로써 자연스레 뇌에 스며들 수 있는 직접교수법도 온라인교수법의 큰 장점이죠. 아이들이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을 때까지 각 단계별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지, 원어민 선생님들이 유능하고 객관적으로 검정된 분들인지 잘 체크하신다면, 화상영어를 통한 학습법은 비용대비 효과는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Q6. 영어를 잘하는 방법 제일 좋은 방법은 외국에 나가서 원어민들과 어울려 살며 전투적으로 배우는 거겠죠? 다만 만만치 않은 비용, 조기유학의 여러 문제점들, 그리고 어른들이라면 더더욱 직장과 가정을 두고 외국에 나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과거 10여 년 전보다 현재 어학연수를 떠나는 숫자가 현저히 줄어든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요? 한국에서 영어를 잘하려면 외국과 최대한 비슷한 환경에서 영어를 배우는 것입니다. 일단 모국어에 익숙해진 우리의 귀를 영어에 익숙해지도록 자주 노출시켜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이라면 5세 정도부터가 외국어를 배울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시기입니다. 11세 이후가 되면 우리의 귀는 모국어만 잘 듣도록 특화되어 영어를 소음으로 인지하기 시작한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영어교육을 일찍 시작하고, 어른들은 반복을 통해 귀를 열어야 하는 이유죠. 두 번째는 영어는 영어로 배워야 합니다. 한국말을 잘하는 미국사람보다는 당연히 한국 사람이 한국말을 더 잘하겠죠? 영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덧붙이자면 한국 사람이라고 외국인에게 한국말을 다 잘 가르칠 수 없는 것처럼, 영어교육 관련 자격을 갖춘 자로서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외국인에게 영어를 배운다면 더 잘 배울 수 있겠죠? 영어는 어순, 문화, 사고방식 등이 한국어와는 너무 다릅니다. 1년, 2년 안에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는 조바심보다는 장기적인 시각을 가지고 꾸준히 해나가는 끈기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Q7. 마지막으로 할 이야기 그 동안 영어교육 플래너로 활동하면서 영어가 생존의 무기가 될 어린 친구들, 스트레스를 엄청 받으면서도 영어로 유창한 회화를 하고 싶은 꿈을 가진 성인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교육여건이나 경제사정 등으로 그 꿈을 포기한 상태였죠. 그런데 그들이 저와 함께 화상영어 학습을 하면서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영어 과목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생활 속의 영어를 접하며 수업을 기다리는 것이었죠. 다양한 자료와 아이템으로 유도하는 수업이 흥미로운 것은 물론이고, 예습과 복습을 통한 밀착지도를 통해 차츰 귀와 입이 열리는 걸 보며 학생은 물론 곁에서 보는 저도 보람을 느낀 겁니다. 영어는 성적표가 아니라 자연스런 생활이며, 세상과의 소통이라는 걸 스스로 깨우친 거죠. IT 최대강국인 우리나라가 영어 말하기에선 꼴지 성적표를 가진 게 참으로 아쉽고 부끄럽습니다. 인도인들은 거지도 영어를 유창하게 잘합니다. 영어가 바로 생존무기이기 때문이죠. 머리가 좋기로 일등인 한국인도 세계 어디를 가든 당당하게 자기의사를 표현하며 영어로 시원하게 소통해야 합니다. 이제는 국가 역시 영어가 생존과 발전의 무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대학이나 좋은 직장을 위한 영어가 아니라, 글로벌시대를 준비하는 미래의 인재양성에 이바지하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저는 앞으로도 영어교육 플래너로서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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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인터뷰] 공성민 한국 예술학교장, 그가 걸어온 한국대중음악시장의 길
[인물인터뷰] 공성민 한국 예술학교장, 그가 걸어온 한국대중음악시장의 길
[사진제공=한국예술학교] Q1. 안녕하세요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한국예술학교장 공성민입니다. 저는 기존 아세아고등학교가 2000년도 한국예술고등학교로 교명이 바뀌고 난 뒤부터 교장으로 시작해서 현재까지 운영해오고 오고 있습니다. 2019년 2월까지 기존 마지막 졸업생을 배출하고 전문예술학교 설립을 위해 폐교 과정을 거쳐 2019년 5월에 한국예술학교로 새롭게 인가를 받아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이 학교는 서울시 교육청 평생교육과에 속하며 학교 형태의 평생교육시설이며 저는 현재 그대로 교장직을 맡아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Q2. 교육자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희 선친이 1987년에 아세아 고등학교를 처음 설립하시고 그 학교가 2000년도 한국예술고등학교로 바뀌는 과정을 쭈욱 지켜보면서 선친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선친은 학교의 교육과정을 통해 예술인을 육성하고자 하는 의지로 학교를 운영해 오셨는데 2017년도에 선친이 타계하시고 그 교육에 대한 뜻을 제가 이어 받아서 계속 학교를 운영하고 발전 시켜나가고 있습니다. 선친은 1970년에 공장을 운영하셨는데 공장을 운영하시면서 지방에서 올라와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한 많은 젊은이들에게 낮에는 일을 그리고 밤에는 공부를 가르치셨습니다. 당시 경인재건학교를 설립하셔서 운영하시다가 공장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그 학교를 접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신학교에 들어가시고 목사가 되신 후 교육을 통한 선교를 하 기 위해 본격적인 교육사업을 시작하게 되셨고 이후 1987년 아세아 고등학교를 세우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선친은 외국어 대학교 독어 독문학과를 나와서 교사자격증을 가지고 있으셨고 모친 역시 서울교대 국어 국문학과를 나오셔서 초창기 학교 설립과 운영에 힘을 보태셨습니다. 부모님의 이런 교육에 대한 열정이 저를 교육자의 길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Q3. 한국예술학교 출신 스타들이 많습니다.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2000년도에 예술계 고등학교로 개편되면서 서울시내에서는 처음으로 실용음악을 가르치는 학교가 되었습니다. 특히 클래식과 실용음악을 같이 접목한 학교로 시작해서 당시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처음 학교에서 배출한 연예인으로 원더걸스 선예와 2AM 조권과 2PM 황찬성으로 시작해 방탄소년단의 뷔와 지민, 현아, 워너원 박우진, 시스타 소유 등 수많은 탑스타들을 배출해냈습니다. [사진제공=한국예술학교] Q4. 학교 폐교설이 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까? 선친이 타계 이후 기존의 일반 고등학교 과정에서 있었던 많은 문제점들을 개선해 예술인 특성화 학교로서의 발전을 모색했습니다. 그동안 운영했던 음악, 미술, 연극영화 학과가 이제는 하나의 New K-Culture 학과로 운영해 좀 더 예술 전문적인 학교로 발돋움 하려고 합니다. 기존의 운영방식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검정고시를 통해 학력인정을 받아야 하고 전문 예술과정은 더 자유롭게 강화되었다는 점입니다. 나아가 학생들에게 더 좋은 교육을 제공하고 보다 더 전문적인 예술인으로서의 성장을 위한 지원을 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Q5. 학교자랑 좀 부탁드립니다. 처음 학교에 와보면 건물의 외관이 오래되고 낡아서 실망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내부의 시설은 학생들이 좋아할만한 최고의 시설이라고 자부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서 늘 좋은 선생님들과의 협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늘 좋은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2019년 현재 우리 학교는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기존에 시도되지 않았던 새로운 방식과 눈높이로 학생들과 소통하는 학교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새로운 교육 모델로서 선두로 나아가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예술학교의 슬로건은 “당신의 꿈을 찾아라.”입니다. 제가 평소 좋아하는 말은 “꿈” 과 “비전”입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준비하는 많은 이들에게 한국예술학교는 자신의 꿈을 발견하고 이룰 수 있는 터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Q6. 방탄소년단의 멤버가 두 명이나 졸업한 학교로 유명합니다. 학교 인기는 어떤가요? 수많은 탑 스타들을 졸업시키고 졸업생들 사이에서는 크게 이슈가 되었는지 교문 밖을 나가보면 중국과 일본분들이 많이 와 사진을 찍고 가곤 합니다. 더군다나 방탄소년단이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다보니 해외까지도 이 학교가 많이 유명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탑 연예인들이 졸업했다는 사실을 알고 해외에서도 유학을 많이 오고 있습니다. Q7. 끝으로 하실 말씀 기존 한국예술고등학교가 한국예술학교로 바뀌었습니다. 좀 더 전문적인 예술 학교로서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동안 일반 예술고등학교가 보여준 많은 한계점을 극복하고 예술교육시장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것입니다. 한국의 문화콘텐츠에 세계가 열광하고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시대가 요구하는 모습으로 한국예술학교는 변화 할 것입니다. 그리고 대응할 것입니다. 성원과 응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