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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피의 사색 # 317 / '간짜장'
래피의 사색 # 317 / '간짜장'
[아시아빅뉴스 김동효 문화칼럼리스트] [사진제공 = DJ래피] 간짜장에 '간'이 붙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많은 분들이 "간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기에 간짜장이다."라고 알고 계시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간짜장의 간은 건식 사우나, 건조 과일, 건포도, 건전지 등의 '건(乾)'과 같은 한자이며, '마르다'라는 뜻이다. '간'은 중국어 발음 [gān]과 비슷하며, 간짜장은 물 없이 볶기 때문에 일반 짜장과 차이가 난다. 중국음식 메뉴를 보면 이렇게 이름 붙은 게 더 있다. 깐풍기, 깐쇼새우가 바로 그런 것들이다. 탕 종류와 달리 물기 없이 튀기거나 볶아 만드는 음식들인데, 머리글자인 '깐'이 바로 '건'이다. 술자리에서 잘 쓰는 말 "건배"에도 같은 한자가 들어 있다. 말 자체의 뜻은 '잔을 말리다', 곧 잔을 비우라는 것이다. 그런데, '건(乾)'자는 '마르다'라는 뜻 외에도 '임금, 하늘, 아버지', 그리고 태극기와 주역에 나오는 "건곤감리"의 건괘(☰)의 '건' 이기도 하다. 乾에는 倝(햇빛 빛날 간)과 을(乙)이 들어있는데, 갑을병정의 을은 음양오행에서 을목, 즉 덩굴 같은 초목을 의미한다. 초목들 위로 해가 밝게 비추는 모습이다. 현재 큰 태풍이 우리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어서 태풍이 지나가고 해가 밝게 비추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래피의 사색 # 316 / '자포자기'
래피의 사색 # 316 / '자포자기'
[아시아빅뉴스 김동효 문화칼럼리스트] [사진제공 = DJ래피] 자포자기의 '포'는 무슨 뜻일까? 1. 포기하다 2. 난폭하다 정답은 놀랍게도 2번이다. 자포자기의 포(暴)는 '사나울 폭/사나울 포'의 뜻인데 '폭력, 횡포, 포악' 등의 단어로 자주 만난다. 반면 포기의 포(抛)는 '던질 포'의 뜻으로 '포기, 포물선' 등에 쓰인다. 자포자기는 맹자에 나오는 말인데, 원문을 보자. 자포자불가여유언야(自暴者不可與有言也) 자기자불가여유위야(自棄者不可與有爲也) 언비예의위지자포야(言非禮義謂之自暴也) 오신불능거인유의위지자기야(吾身不能居仁由義謂之自棄也) “자신을 막 대하는 사람과는 말도 섞기 싫다. 자신의 존엄을 버리는 사람과는 함께 뭘 하고 싶지 않다. 예(禮)와 의(義)를 부정하고 비난하는 사람은 자신을 막 대하는 사람이며, 어떻게 인의(仁義)를 실천할 수 있느냐고 자신의 존엄을 부정하는 사람은 자신을 버리는 사람이다.” 타인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려면 그전에 나를 먼저 사랑해야 한다. 사랑은 최소한의 폭력이고, 최소한의 횡포다. 누군가에게 최소한의 폭력과 최소한의 횡포를 가하려는 마음, 그게 사랑이다. 사랑의 확장은 어디서부터 시작하는가? 가까운 데서부터다. 제일 가까운 곳은 바로 나다. 나부터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포는 위험하다. 자기한테 폭력을 가하고 횡포를 부리는 마음, 그게 자포다. 자기에 대한 폭력과 횡포를 서슴지 않는 사람이라면, 남에게는 어떻겠는가? 우리 모두는 거의 0에 가까운 확률로 태어난 우주적 존재다. 그런 나를 막 대하고 포기하는 게 '자포자기'다. 누가 뭐래도 나는 사랑받아야 될 존재다. 나에 대한 사랑이 선행되어야 비로소 남도 사랑할 수 있다. 한번 돌아보자. 스스로를 사랑하고 있는지.
래피의 사색 # 315 / '철학'
래피의 사색 # 315 / '철학'
[아시아빅뉴스 김동효 문화칼럼리스트] [사진제공 = DJ래피] 철학, 철학, 철학. 대체 철학은 무엇인가? 무언가가 궁금할 때는 그 단어를 해부해보면 쉽다. 철은 '밝을 철, 哲'이다. '사리에 밝다, 어둡다'의 경계에는 '안다, 모른다'가 있다. 밝으려면 알아야 한다. 뭘 좀 알아야 사랑할 수 있다. 남을 사랑하려면 남을 알아야 하고, 나를 사랑하려면 나를 알아야 한다. 영어로 풀어봐도 비슷하다. Philosophy, '앎에 대한 사랑' 또는 '사랑하면 알게 된다' 또는 '알아야 사랑하게 된다' 등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나는 아무래도 '밝으려면 알아야 하고, 알아야 사랑하게 된다'라고 해석하고 싶다. 하여 철학이란 결국 '나를 아는 것' 또는 '나를 알아가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메이저리그 전설의 강타자였던 뉴욕 양키즈의 미키 맨틀(Mickle Mantle)은 이런 말을 남겼다. "It’s unbelievable how much you don’t know about the game you’ve been playing all your life (자신이 평생 해온 경기에 대해 우리는 놀랄 만큼 무지하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자 습관의 동물이다. 일상생활에서, 인간관계에서, 시간의 사용과 분배에서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패턴, 그게 바로 습관이 되어 내 몸에 각인이 된다. 그 굳어버린 관성을 깨느냐 마느냐의 시작은 바로 나 자신을, 내 습관을, 내 패턴을 망각하지 않고 알아채는 것이다. 시간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 누구나 24시간을 부여받고 그것을 적절히 사용하거나 또는 낭비하면서 살아간다. 나의 24시간 사용은 어떤지를 방학 때 생활계획표 그리듯이 둥근 원으로 한 번 그려보시라. 나는 시간의 소중함을 예전에는 몰랐다. 부끄럽게도 허투루 보낸 시간이 너무 많다. 늦게나마 정신 차리고 시간에게 참회하는 마음으로 자투리 인간의 삶을 산다. TV도 그래서 없앴다. 1분, 1초의 자투리 시간도 버리지 않고 한 글자라도 더 봐야 뭔가 참회하는 마음이 든다. 그렇게 활자 중독이 되고부터 지난날을, 많은 것을 성찰하며 돌아보게 되었다. 몽테뉴는 "모든 인간은 자신을 직시해야 한다. 나는 내 안을 들여다보고, 오직 나 자신과 관계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생각하고 다스리며 음미한다."라고 말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현재 상태를 만드는 데 관여하고 있고 또 관여해왔다. 현재의 나를 만든 것은 남이 아니라 따지고 보면 바로 나다. 다만 내 습관을, 내 패턴을 망각하고 살 뿐이다. 누구나 자기를 데리고 사는 게 가장 힘들다. 나를 유지하고, 나와 싸우고, 나를 견디면서 사는 게 참 쉽지 않다. 세상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다. 내가 바뀌면 세상도 바뀐다.
[여창용의 연예이바구] 연예기자가 기사를 자랑스럽게 쓰는 날은 언제?
[여창용의 연예이바구] 연예기자가 기사를 자랑스럽게 쓰는 날은 언제?
[사진출처=구하라 SNS] 여창용 편집부장은 스포츠서울TV, 티브이데일리, 이슈데일리 등 다수의 매체에서 근무해온 대중문화, 스포츠 전문기자 출신으로 아시아빅뉴스와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여창용의 연예이바구]는 여창용 부장의 시각으로 바라본 연예 이슈를 말하는 코너입니다. 오랜만에 쓰게 된 칼럼이 연예계 슬픈 소식을 다룬 것이어서 마음이 무겁다. 또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故 구하라 씨의 삼가 명복을 빈다. 필자는 연예인들의 죽음과 얽힌 에피소드가 많다. 보통 사람들에겐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적어도 필자에겐 그렇다. 첫번째 입사한 언론사에서 처음으로 나간 취재 현장이 배우 故 정다빈의 장례식이었다. '뉴 논스톱' 시리즈를 통해 인기스타로 성장한 故 정다빈은 깜찍함과 청순함을 동시에 갖춘 외모에 안정적인 연기력과 탁월한 캐릭터 해석력으로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여배우였다. 하지만 발전하는 연기력을 꽃피우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다. 이후 많은 연예인들의 부고를 접하게 됐다. 그중에서 아직 사회초년병 티를 벗기도 전에 접한 故 최진실의 소식은 필자의 기자 커리어에 가장 큰 위기였다. 이때 누리꾼들의 악플에 의한 피해가 거론됐다. [사진출처=구하라 SNS] 이후에도 악플에 의한 피해는 끊이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몇몇은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했다. 그럴때마다 악플에 의한 피해를 성토하는 기사가 쏟아졌지만 그때뿐이었다. 최근에는 아이돌 스타들의 비극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특히 샤이니 출신 종현을 비롯해 걸그룹 fx 출신 가수이자 배우인 설리 그리고 카라 출신 가수이자 배우 구하라까지 이들의 비극적인 소식이 팬들에게 충격을 줬다. 특히 설리와 구하라의 경우 삼류 언론 종사자들의 신상털기식 보도와 몰지각한 누리꾼들의 악플로 고통을 받은 대표적인 사례다.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기사를 빙자한 게시물들은 인터넷 공간을 더럽히고 어지럽혔다. [사진출처=구하라 SNS] 구하라와 설리는 생전에도 남다른 친분을 이어왔다. 걸그룹 출신 연기자라는 점과 어린 시절부터 연예 활동을 해왔다는 공통분모 덕분에 그들은 친자매와 같은 우애를 보였다. 설리의 비극적인 소식을 접한 구하라가 SNS를 통해 그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며 그의 팬들은 걱정 어린 격려와 응원을 보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구하라도 비극적인 소식을 전했다. 역시나 구하라의 비극적인 소식과 관련해 다양한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구하라가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렸을 때 구하라를 조롱하고, 상대 남성 입장에서 기사를 썼던 언론들이 이제서야 구하라를 추모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누가 구하라를 죽였는가"라는 제목의 기사에 누리꾼들은 <기자들>이라는 댓글을 달고 있다. 필자도 이런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비록 필자가 그런 기사를 쓰지 않았다하더라도 그것이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과거에도 반성하고 또 반성했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사진출처=구하라 SNS] 언론이 위기를 맞고 있는 현실에서 필자 혼자의 힘으로 언론 환경을 바꾸기는 어렵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라는 말을 하는 것조차 부끄럽다. 필자가 연예에 관련된 기사를 자랑스럽게 쓰는 날이 오기는 할까? 본 기사는 여창용 기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문화히치하이커가 만난 이 달의 문화예술인(1) - 회화주의사진미학 고려명
문화히치하이커가 만난 이 달의 문화예술인(1) - 회화주의사진미학 고려명
문화히치하이커가 만난 문화예술인(1) - 회화주의사진미학 고려명 포도밭의 장미- 가득 찬 공허의 향연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회화주의사진미학>의 가장 훌륭한 부분은 사실주의에 입혀진 작가의 독창적인 세계관과 보는 이의 감성에 호소하는 세련된 미적 표현력이다. 1850년대부터 1900년대에 나온 대표적인 모더니즘 사진작품들은 시대를 초월한 미학적 의미를 인정받는다. 작은 엽서사이즈부터 아트포스터까지 예술작품 앞에서 보내는 시간은 내면의 대화를 시작하게 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 날씨, 기분, 공간의 변화와도 같은 요소에 감상이 영향을 받고, 투사된 나의 감정은 작품에 비축된다. 감상에 기억과 성장의 겹이 쌓이며 거듭나는 것이다. 그래서 갤러리를 목적으로 한 외출이나 회화·사진작품의 소유는 나의 역사 만들기에 적극성을 갖겠다는 의지의 표명이 될 수 있다. 초(草)·충(蟲)·도(圖)라는 주제를 담은 백자토기를 시작으로, 야채와 곤충을 통해 익(날개), 허(존재의 의미), 궁(생명)으로 한국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사진작가 고려명. 실재와 이면으로 공(空)의 관계를 탐구하는 그가 한국으로 돌아와 <La rose du vignoble·포도밭의 장미>라는 전시로 작품을 선보인다. 그는 피사체를 아날로그 방식으로 근접 촬영한 후 대형화하여 대상의 본질을 추구하는 한편, 근원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작품들로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았다. 작가는 “필름사진을 통해 아름다움의 소유를 욕망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흔히 포도는 생명과 번영을 상징한다. 이번 전시는 포도와 장미의 수호관계를 테마로 한다. 그 둘은 포도원에서 서로를 지켜주며 위험에 처했을 때 신호를 보내는 공생관계이다. 이 때 희생과 상호작용이 따르기도 한다. (사진설명 : 포도 연작 앞, 고려명 작가) <이미지지제공 : 갤러리웰> 프랑스 사진학교를 졸업한 작가는 현지에서 파리테러 사건을 겪은 뒤 <고난 속 아름다움>이라는 주제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꽃이나 열매의 가장 아름다운 발색을 볼 수 있는 시기는 싱그러울 때보다 물기가 말라가기 시작할 때라는 점에서 인간의 삶을 겹쳐볼 수 있다. 그런 식으로 시각예술은 삶에 대한 여러 가지 사유를 제공한다. 포도연작을 통해 표현된 포도알의 상실은, 신을 향한 *아프락사스의 비상이라는 면에서 앞선 작품인 익(날개)과도 맞닿아 있는 듯하다. 한편, 요즘 청년 예술가들은 예전보다 과학에 큰 흥미를 갖는 경향이 있다. 작가가 필름현상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미지제공 : 갤러리웰> 포도밭의 장미- 가득 찬 공허의 향연작가 고려명은 근접 촬영 후 선을 강조하는 인화기술로 최대한의 가시성을 추구한다. 섬세한 디테일로 표현된 장미는 그 동안 몰랐던 새로운 별을 보는 기분마저 든다. 어떤 필름을 사용하느냐는 질문에 놀랍게도 우주관측용 필름을 이스라엘에서 공수해서 사용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포도와 장미의 연작들은 작지 않은 사이즈로, 각각 120호와 80호에 해당된다. 장미는 9미터까지 키워도 문제없는 사이즈로 촬영되었다. 우주가 폭발하는 듯한 장미는 회녹색과 담청색, 그림자같은 먹색으로 다가와, 피보다 붉고 벌레의 등껍질같은 군청색으로 관객을 유혹한다. 색을 배제한 포도들은 시간에 따른 질감의 변화를 더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는 관객들에게 아무것도 암시하거나 강요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작가는 “태양광이 전지에 닿았을 때 전기로 변하지 않느냐”며 관객들이 작품 속에 담긴 에너지, 생명력을 통한 아름다움을 느끼기를 소망하는 것이 전부라고 말한다. 설득이 아닌 공감의 소통이다. 작가와의 문답 - 작품이 음악적이다 고: 어릴 때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현의 흐름에 시간을 내맡길 수는 있었지만 거기에 매료되지는 못했다. 정작 완전히 빠져든 것은 카메라, 아날로그식 필름을 통해 보는 세상이었다. - 왜 하필 포도인가? 고: 포도는 비어있는 동시에 가득 차 있으며 시드는 모습마저 아름답다. 작품을 보는 이가 시련이 있다면 위로를 받고, 고민이 있다면 넣어두고 좋은 시기에는 에너지를 비축했다가 다시 꺼내갈 수도 있는 <나만의 감정은행>으로 사진을 감상해주셨으면 한다. 그런 방식으로 예술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미적 가치와 작품 자체가 가지는 에너지, 순환의 가능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릇이 깨끗해야 담을 수 있지 않나. 포도는 숨기고 있는 것이 없다. - 포도의 표정이 모두 다르다. 살아있다. 고: 맞다. 디테일의 표현을 극대화하는 것에 신경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 작품의 형태나 색보다 피사체가 가진 에너지를 표현하는 것을 중심으로 작업하는 작가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직접 작품을 보니 에너지뿐 아니라 입자의 향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꾸 보게 되는 힘이 있다. 고:해석에 대해서는 어떤 참견도 하고 싶지 않다. 사람도 처음 접했을 때는 알 수 없는 것이 있듯이, 작품을 직접 대하고 거듭 감상했을 때 그 것을 발견하는 기쁨이 있길 바란다. 눈을 그리자마자 승천했다는 용 그림처럼 관객이 바라보는 순간에 작품이 완성되고 새로운 의미가 탄생해서 보는 이의 마음속에 자리하면 좋겠다. -흑백처리가 많은데 특별한 이유라도? 고: 관객의 시선에 따라 색이 추가되는 연작이 있다. 흑백으로 디테일을 더 강조하고 싶었던 의미도 있다. -다음 작품에 대해 여러 가지를 구상중이다. 익·허·궁시리즈의 ‘속이 빈 매미껍데기’처럼, 어떤 흔적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 갤러리웰> 충만한 생명력이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감상하는 일은 많은 사색거리를 제공한다. 회화나 사진작품은 형태의 아름다움이라는 지점에서 시작해서 감상자의 내면에서 거듭난다. 이번 전시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위치한 [갤러리 웰]에서 12월 6일까지 선보인다. 정재희 <문화예술기획자 | 칼럼니스트>blesskassi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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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피의 사색 # 316 / '자포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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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창용의 연예이바구] 연예기자가 기사를 자랑스럽게 쓰는 날은 언제?
[여창용의 연예이바구] 연예기자가 기사를 자랑스럽게 쓰는 날은 언제?
[사진출처=구하라 SNS] 여창용 편집부장은 스포츠서울TV, 티브이데일리, 이슈데일리 등 다수의 매체에서 근무해온 대중문화, 스포츠 전문기자 출신으로 아시아빅뉴스와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여창용의 연예이바구]는 여창용 부장의 시각으로 바라본 연예 이슈를 말하는 코너입니다. 오랜만에 쓰게 된 칼럼이 연예계 슬픈 소식을 다룬 것이어서 마음이 무겁다. 또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故 구하라 씨의 삼가 명복을 빈다. 필자는 연예인들의 죽음과 얽힌 에피소드가 많다. 보통 사람들에겐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적어도 필자에겐 그렇다. 첫번째 입사한 언론사에서 처음으로 나간 취재 현장이 배우 故 정다빈의 장례식이었다. '뉴 논스톱' 시리즈를 통해 인기스타로 성장한 故 정다빈은 깜찍함과 청순함을 동시에 갖춘 외모에 안정적인 연기력과 탁월한 캐릭터 해석력으로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여배우였다. 하지만 발전하는 연기력을 꽃피우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다. 이후 많은 연예인들의 부고를 접하게 됐다. 그중에서 아직 사회초년병 티를 벗기도 전에 접한 故 최진실의 소식은 필자의 기자 커리어에 가장 큰 위기였다. 이때 누리꾼들의 악플에 의한 피해가 거론됐다. [사진출처=구하라 SNS] 이후에도 악플에 의한 피해는 끊이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몇몇은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했다. 그럴때마다 악플에 의한 피해를 성토하는 기사가 쏟아졌지만 그때뿐이었다. 최근에는 아이돌 스타들의 비극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특히 샤이니 출신 종현을 비롯해 걸그룹 fx 출신 가수이자 배우인 설리 그리고 카라 출신 가수이자 배우 구하라까지 이들의 비극적인 소식이 팬들에게 충격을 줬다. 특히 설리와 구하라의 경우 삼류 언론 종사자들의 신상털기식 보도와 몰지각한 누리꾼들의 악플로 고통을 받은 대표적인 사례다.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기사를 빙자한 게시물들은 인터넷 공간을 더럽히고 어지럽혔다. [사진출처=구하라 SNS] 구하라와 설리는 생전에도 남다른 친분을 이어왔다. 걸그룹 출신 연기자라는 점과 어린 시절부터 연예 활동을 해왔다는 공통분모 덕분에 그들은 친자매와 같은 우애를 보였다. 설리의 비극적인 소식을 접한 구하라가 SNS를 통해 그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며 그의 팬들은 걱정 어린 격려와 응원을 보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구하라도 비극적인 소식을 전했다. 역시나 구하라의 비극적인 소식과 관련해 다양한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구하라가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렸을 때 구하라를 조롱하고, 상대 남성 입장에서 기사를 썼던 언론들이 이제서야 구하라를 추모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누가 구하라를 죽였는가"라는 제목의 기사에 누리꾼들은 <기자들>이라는 댓글을 달고 있다. 필자도 이런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비록 필자가 그런 기사를 쓰지 않았다하더라도 그것이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과거에도 반성하고 또 반성했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사진출처=구하라 SNS] 언론이 위기를 맞고 있는 현실에서 필자 혼자의 힘으로 언론 환경을 바꾸기는 어렵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라는 말을 하는 것조차 부끄럽다. 필자가 연예에 관련된 기사를 자랑스럽게 쓰는 날이 오기는 할까? 본 기사는 여창용 기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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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히치하이커가 만난 이 달의 문화예술인(1) - 회화주의사진미학 고려명
문화히치하이커가 만난 이 달의 문화예술인(1) - 회화주의사진미학 고려명
문화히치하이커가 만난 문화예술인(1) - 회화주의사진미학 고려명 포도밭의 장미- 가득 찬 공허의 향연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회화주의사진미학>의 가장 훌륭한 부분은 사실주의에 입혀진 작가의 독창적인 세계관과 보는 이의 감성에 호소하는 세련된 미적 표현력이다. 1850년대부터 1900년대에 나온 대표적인 모더니즘 사진작품들은 시대를 초월한 미학적 의미를 인정받는다. 작은 엽서사이즈부터 아트포스터까지 예술작품 앞에서 보내는 시간은 내면의 대화를 시작하게 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 날씨, 기분, 공간의 변화와도 같은 요소에 감상이 영향을 받고, 투사된 나의 감정은 작품에 비축된다. 감상에 기억과 성장의 겹이 쌓이며 거듭나는 것이다. 그래서 갤러리를 목적으로 한 외출이나 회화·사진작품의 소유는 나의 역사 만들기에 적극성을 갖겠다는 의지의 표명이 될 수 있다. 초(草)·충(蟲)·도(圖)라는 주제를 담은 백자토기를 시작으로, 야채와 곤충을 통해 익(날개), 허(존재의 의미), 궁(생명)으로 한국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사진작가 고려명. 실재와 이면으로 공(空)의 관계를 탐구하는 그가 한국으로 돌아와 <La rose du vignoble·포도밭의 장미>라는 전시로 작품을 선보인다. 그는 피사체를 아날로그 방식으로 근접 촬영한 후 대형화하여 대상의 본질을 추구하는 한편, 근원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작품들로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았다. 작가는 “필름사진을 통해 아름다움의 소유를 욕망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흔히 포도는 생명과 번영을 상징한다. 이번 전시는 포도와 장미의 수호관계를 테마로 한다. 그 둘은 포도원에서 서로를 지켜주며 위험에 처했을 때 신호를 보내는 공생관계이다. 이 때 희생과 상호작용이 따르기도 한다. (사진설명 : 포도 연작 앞, 고려명 작가) <이미지지제공 : 갤러리웰> 프랑스 사진학교를 졸업한 작가는 현지에서 파리테러 사건을 겪은 뒤 <고난 속 아름다움>이라는 주제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꽃이나 열매의 가장 아름다운 발색을 볼 수 있는 시기는 싱그러울 때보다 물기가 말라가기 시작할 때라는 점에서 인간의 삶을 겹쳐볼 수 있다. 그런 식으로 시각예술은 삶에 대한 여러 가지 사유를 제공한다. 포도연작을 통해 표현된 포도알의 상실은, 신을 향한 *아프락사스의 비상이라는 면에서 앞선 작품인 익(날개)과도 맞닿아 있는 듯하다. 한편, 요즘 청년 예술가들은 예전보다 과학에 큰 흥미를 갖는 경향이 있다. 작가가 필름현상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미지제공 : 갤러리웰> 포도밭의 장미- 가득 찬 공허의 향연작가 고려명은 근접 촬영 후 선을 강조하는 인화기술로 최대한의 가시성을 추구한다. 섬세한 디테일로 표현된 장미는 그 동안 몰랐던 새로운 별을 보는 기분마저 든다. 어떤 필름을 사용하느냐는 질문에 놀랍게도 우주관측용 필름을 이스라엘에서 공수해서 사용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포도와 장미의 연작들은 작지 않은 사이즈로, 각각 120호와 80호에 해당된다. 장미는 9미터까지 키워도 문제없는 사이즈로 촬영되었다. 우주가 폭발하는 듯한 장미는 회녹색과 담청색, 그림자같은 먹색으로 다가와, 피보다 붉고 벌레의 등껍질같은 군청색으로 관객을 유혹한다. 색을 배제한 포도들은 시간에 따른 질감의 변화를 더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는 관객들에게 아무것도 암시하거나 강요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작가는 “태양광이 전지에 닿았을 때 전기로 변하지 않느냐”며 관객들이 작품 속에 담긴 에너지, 생명력을 통한 아름다움을 느끼기를 소망하는 것이 전부라고 말한다. 설득이 아닌 공감의 소통이다. 작가와의 문답 - 작품이 음악적이다 고: 어릴 때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현의 흐름에 시간을 내맡길 수는 있었지만 거기에 매료되지는 못했다. 정작 완전히 빠져든 것은 카메라, 아날로그식 필름을 통해 보는 세상이었다. - 왜 하필 포도인가? 고: 포도는 비어있는 동시에 가득 차 있으며 시드는 모습마저 아름답다. 작품을 보는 이가 시련이 있다면 위로를 받고, 고민이 있다면 넣어두고 좋은 시기에는 에너지를 비축했다가 다시 꺼내갈 수도 있는 <나만의 감정은행>으로 사진을 감상해주셨으면 한다. 그런 방식으로 예술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미적 가치와 작품 자체가 가지는 에너지, 순환의 가능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릇이 깨끗해야 담을 수 있지 않나. 포도는 숨기고 있는 것이 없다. - 포도의 표정이 모두 다르다. 살아있다. 고: 맞다. 디테일의 표현을 극대화하는 것에 신경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 작품의 형태나 색보다 피사체가 가진 에너지를 표현하는 것을 중심으로 작업하는 작가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직접 작품을 보니 에너지뿐 아니라 입자의 향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꾸 보게 되는 힘이 있다. 고:해석에 대해서는 어떤 참견도 하고 싶지 않다. 사람도 처음 접했을 때는 알 수 없는 것이 있듯이, 작품을 직접 대하고 거듭 감상했을 때 그 것을 발견하는 기쁨이 있길 바란다. 눈을 그리자마자 승천했다는 용 그림처럼 관객이 바라보는 순간에 작품이 완성되고 새로운 의미가 탄생해서 보는 이의 마음속에 자리하면 좋겠다. -흑백처리가 많은데 특별한 이유라도? 고: 관객의 시선에 따라 색이 추가되는 연작이 있다. 흑백으로 디테일을 더 강조하고 싶었던 의미도 있다. -다음 작품에 대해 여러 가지를 구상중이다. 익·허·궁시리즈의 ‘속이 빈 매미껍데기’처럼, 어떤 흔적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 갤러리웰> 충만한 생명력이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감상하는 일은 많은 사색거리를 제공한다. 회화나 사진작품은 형태의 아름다움이라는 지점에서 시작해서 감상자의 내면에서 거듭난다. 이번 전시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위치한 [갤러리 웰]에서 12월 6일까지 선보인다. 정재희 <문화예술기획자 | 칼럼니스트>blesskassi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