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피의 사색 # 287 / '뜻'

2018-08-08 17:59 입력

[김동효(DJ래피) 기자 nikufes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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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피의 사색 # 321 / ‘완벽’
[아시아빅뉴스 김동효 문화칼럼리스트] [사진제공 = DJ래피] 당신은 절대 완벽한 정삼각형을 그릴 수 없다. 나는 거기에 자신 있게 베팅할 수 있다. ''묻고 더블로 가!'' 정삼각형을 한번 그려보라. 비슷하게는 그릴 수 있지만 완벽하게 그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 변의 길이가 똑같아야 하는데 아무리 정교하게 그려도 오차가 생긴다. 우리가 지금까지 그려온 정삼각형은 사실 정삼각형이 아니다. 우린 오직 마음속으로만 완벽한 정삼각형 또는 원형을 그려볼 수 있다. 현실 세계의 어떤 물체도 완벽하게 둥글 수는 없다. 다만 좀 더 또는 좀 덜 둥근 원들만이 존재한다. 사람인들 어떻겠는가? 사람은 완벽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떤 선택도 완벽할 수 없다. 삶은 하나의 기회를 선택하는 동시에 다른 기회를 포기하는 과정의 반복이다. 다만 최선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이게 바로 삶의 기본값이다.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원인 중 하나는 완벽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완벽이란 불가능한 환상인데도, 그걸 달성하지 못하는 좌절감이 우리를 짓누른다. 해결책은 하나다. 인생에는 완벽함이 없다는 걸 기본값으로 다시 설정하는 것. 중요한 건 자신이 살아갈 인생을 선택했다면 열심히 그 인생을 가꾸어야 한다는 거다. 소위 성공했다는 사람들의 겉모습만 보면 늘 완벽한 선택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사실 숱하게 실패한 선택들과 방향 전환이 공존한다. 실패를 통해 자신을 더 알게 되고 보완했을 따름이다. 운이 좋은 사람들은 오히려 완벽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항상 문을 활짝 열어놓는다. 뜻밖의 상황이 찾아와 언제라도 문을 두드리게 한다. 인생은 그저 '뜻밖에'의 연속일 따름이므로. ''중요한 것은 네가 무엇을 향해 가느냐 하는 것이지, 어디에 도착하느냐가 아니다. 인간은 죽음 이외의 그 어떤 곳에도 도착하지 않는다.'' 《사막의 도시,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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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피의 사색 # 320 / ‘싸움을 거는 가장 빠른 방법’
[아시아빅뉴스 김동효 문화칼럼리스트] [사진제공 = DJ래피] “시끄러워! 내 말 들어! (삿대질 추가)” “됐고! 내가 말이야...!” 소통 단절과 싸움을 유발하는 신호들. 다양한 생각과 다양한 시각을 원천봉쇄하는 말들. 하여 반면교사와 타산지석으로 삼아 되새기고 되새겨야 할 주문은 이거다. “듣자, 듣자, 듣자.” 어떤 자극이 오더라도 욱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고 현명한 대처를 하려면 몇 초간의 기다림이 필요하다. 이성과 감성이 조율되는 겸손과 인내의 시간 몇 초, 이게 듣기의 기본 조건이다. 공자의 스텝을 밟아보면 불혹, 지천명 다음이 바로 ‘이순(耳順)’인데, 귀가 순해진다는 뜻이다. 오해해서는 안 된다. 나이 60이 되면 자동으로 귀가 순해진다는 게 아니라, 나이 60이 되어도 듣지 않고 버럭 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경청이 이렇게나 어렵다. 경청은 한자로 ‘傾聽’이다. ‘청(聽)’은 귀 이(耳), 눈 목(目), 마음 심(心) 등으로 구성돼 있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함께 해야 비로소 경청이 된다. 마음을 여는 게 핵심이다. “태산불양토양(泰山不讓土壤), 하해불택세류(河海不擇細流).” 태산은 한 줌의 흙도 마다하지 않고, 강과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는다. 내가 듣기 싫은 말이 들려온다고 버럭 하는 것은 경청의 자세가 아니다. 사람에게 다가서는 길은 혀를 내미는 것이 아니라 귀를 내미는 것이다. 인간은 무슨 동물? 습관의 동물, 망각의 동물. 경청도 하나의 습관이며 훈련에 의해서 충분히 개선될 수 있다. ‘말을 너무 많이 한다’ 또는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다’ 등의 비난은 있지만 ‘너무 많이 듣는다’라는 비난은 들어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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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피의 사색 # 318 / '추석, 뜻은 알고 가자'
[아시아빅뉴스 김동효 문화칼럼리스트] [사진제공 = DJ래피] 추석(秋夕), 다른 거 없다. 가을 저녁이라는 뜻이다.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가족들끼리 형편에 맞게 차린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오손도손 모여 즐겁고 좋은 이야기만 하시길. 과유불급,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 또한 조상을 기리는 방법은 얼마든지 다양하게 할 수 있다. 각자 돌아가신 분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을 차려놓고 알아서 하면 된다. 차례상 구성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명절에 지내는 제사를 차례(茶禮)라고 하는 건 문자 그대로 차 한 잔 놓고 지내도 되는 예식이라는 거다. 구한말 신분제도가 없어지면서 소위 양반들이 구별짓기를 하려고 만들어낸 말들이 '홍동백서'니 '조율이시'니 하는 것들이다. 고전 그 어느 책에도 저런 말은 나오지 않는다. 어떤 집은 '조율이시'라고, 어떤 집은 '조율시이'라고 싸우는데, 배와 감을 어떤 순서로 놓는 게 조상을 기리는 데 있어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그게 그럴 일인가 정말? 추석은 그저 밤에 달이 크게 뜨면서 가을이 시작되는 날이라 즐겁게 놀기 위해 만든 날이다. 이제는 추석 차례상에 대한 강박을 거둘 때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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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피의 사색 # 317 / '간짜장'
래피의 사색 # 317 / '간짜장'
[아시아빅뉴스 김동효 문화칼럼리스트] [사진제공 = DJ래피] 간짜장에 '간'이 붙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많은 분들이 "간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기에 간짜장이다."라고 알고 계시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간짜장의 간은 건식 사우나, 건조 과일, 건포도, 건전지 등의 '건(乾)'과 같은 한자이며, '마르다'라는 뜻이다. '간'은 중국어 발음 [gān]과 비슷하며, 간짜장은 물 없이 볶기 때문에 일반 짜장과 차이가 난다. 중국음식 메뉴를 보면 이렇게 이름 붙은 게 더 있다. 깐풍기, 깐쇼새우가 바로 그런 것들이다. 탕 종류와 달리 물기 없이 튀기거나 볶아 만드는 음식들인데, 머리글자인 '깐'이 바로 '건'이다. 술자리에서 잘 쓰는 말 "건배"에도 같은 한자가 들어 있다. 말 자체의 뜻은 '잔을 말리다', 곧 잔을 비우라는 것이다. 그런데, '건(乾)'자는 '마르다'라는 뜻 외에도 '임금, 하늘, 아버지', 그리고 태극기와 주역에 나오는 "건곤감리"의 건괘(☰)의 '건' 이기도 하다. 乾에는 倝(햇빛 빛날 간)과 을(乙)이 들어있는데, 갑을병정의 을은 음양오행에서 을목, 즉 덩굴 같은 초목을 의미한다. 초목들 위로 해가 밝게 비추는 모습이다. 현재 큰 태풍이 우리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어서 태풍이 지나가고 해가 밝게 비추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