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피의 사색 # 301 / '노예의 마음'

2019-03-05 12:52 입력

[김동효(DJ래피) 기자 nikufes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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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인기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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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피의 사색 # 315 / '철학'
래피의 사색 # 315 / '철학'
[아시아빅뉴스 김동효 문화칼럼리스트] [사진제공 = DJ래피] 철학, 철학, 철학. 대체 철학은 무엇인가? 무언가가 궁금할 때는 그 단어를 해부해보면 쉽다. 철은 '밝을 철, 哲'이다. '사리에 밝다, 어둡다'의 경계에는 '안다, 모른다'가 있다. 밝으려면 알아야 한다. 뭘 좀 알아야 사랑할 수 있다. 남을 사랑하려면 남을 알아야 하고, 나를 사랑하려면 나를 알아야 한다. 영어로 풀어봐도 비슷하다. Philosophy, '앎에 대한 사랑' 또는 '사랑하면 알게 된다' 또는 '알아야 사랑하게 된다' 등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나는 아무래도 '밝으려면 알아야 하고, 알아야 사랑하게 된다'라고 해석하고 싶다. 하여 철학이란 결국 '나를 아는 것' 또는 '나를 알아가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메이저리그 전설의 강타자였던 뉴욕 양키즈의 미키 맨틀(Mickle Mantle)은 이런 말을 남겼다. "It’s unbelievable how much you don’t know about the game you’ve been playing all your life (자신이 평생 해온 경기에 대해 우리는 놀랄 만큼 무지하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자 습관의 동물이다. 일상생활에서, 인간관계에서, 시간의 사용과 분배에서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패턴, 그게 바로 습관이 되어 내 몸에 각인이 된다. 그 굳어버린 관성을 깨느냐 마느냐의 시작은 바로 나 자신을, 내 습관을, 내 패턴을 망각하지 않고 알아채는 것이다. 시간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 누구나 24시간을 부여받고 그것을 적절히 사용하거나 또는 낭비하면서 살아간다. 나의 24시간 사용은 어떤지를 방학 때 생활계획표 그리듯이 둥근 원으로 한 번 그려보시라. 나는 시간의 소중함을 예전에는 몰랐다. 부끄럽게도 허투루 보낸 시간이 너무 많다. 늦게나마 정신 차리고 시간에게 참회하는 마음으로 자투리 인간의 삶을 산다. TV도 그래서 없앴다. 1분, 1초의 자투리 시간도 버리지 않고 한 글자라도 더 봐야 뭔가 참회하는 마음이 든다. 그렇게 활자 중독이 되고부터 지난날을, 많은 것을 성찰하며 돌아보게 되었다. 몽테뉴는 "모든 인간은 자신을 직시해야 한다. 나는 내 안을 들여다보고, 오직 나 자신과 관계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생각하고 다스리며 음미한다."라고 말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현재 상태를 만드는 데 관여하고 있고 또 관여해왔다. 현재의 나를 만든 것은 남이 아니라 따지고 보면 바로 나다. 다만 내 습관을, 내 패턴을 망각하고 살 뿐이다. 누구나 자기를 데리고 사는 게 가장 힘들다. 나를 유지하고, 나와 싸우고, 나를 견디면서 사는 게 참 쉽지 않다. 세상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다. 내가 바뀌면 세상도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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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창용의 연예이바구] 연예기자가 기사를 자랑스럽게 쓰는 날은 언제?
[여창용의 연예이바구] 연예기자가 기사를 자랑스럽게 쓰는 날은 언제?
[사진출처=구하라 SNS] 여창용 편집부장은 스포츠서울TV, 티브이데일리, 이슈데일리 등 다수의 매체에서 근무해온 대중문화, 스포츠 전문기자 출신으로 아시아빅뉴스와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여창용의 연예이바구]는 여창용 부장의 시각으로 바라본 연예 이슈를 말하는 코너입니다. 오랜만에 쓰게 된 칼럼이 연예계 슬픈 소식을 다룬 것이어서 마음이 무겁다. 또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故 구하라 씨의 삼가 명복을 빈다. 필자는 연예인들의 죽음과 얽힌 에피소드가 많다. 보통 사람들에겐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적어도 필자에겐 그렇다. 첫번째 입사한 언론사에서 처음으로 나간 취재 현장이 배우 故 정다빈의 장례식이었다. '뉴 논스톱' 시리즈를 통해 인기스타로 성장한 故 정다빈은 깜찍함과 청순함을 동시에 갖춘 외모에 안정적인 연기력과 탁월한 캐릭터 해석력으로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여배우였다. 하지만 발전하는 연기력을 꽃피우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다. 이후 많은 연예인들의 부고를 접하게 됐다. 그중에서 아직 사회초년병 티를 벗기도 전에 접한 故 최진실의 소식은 필자의 기자 커리어에 가장 큰 위기였다. 이때 누리꾼들의 악플에 의한 피해가 거론됐다. [사진출처=구하라 SNS] 이후에도 악플에 의한 피해는 끊이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몇몇은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했다. 그럴때마다 악플에 의한 피해를 성토하는 기사가 쏟아졌지만 그때뿐이었다. 최근에는 아이돌 스타들의 비극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특히 샤이니 출신 종현을 비롯해 걸그룹 fx 출신 가수이자 배우인 설리 그리고 카라 출신 가수이자 배우 구하라까지 이들의 비극적인 소식이 팬들에게 충격을 줬다. 특히 설리와 구하라의 경우 삼류 언론 종사자들의 신상털기식 보도와 몰지각한 누리꾼들의 악플로 고통을 받은 대표적인 사례다.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기사를 빙자한 게시물들은 인터넷 공간을 더럽히고 어지럽혔다. [사진출처=구하라 SNS] 구하라와 설리는 생전에도 남다른 친분을 이어왔다. 걸그룹 출신 연기자라는 점과 어린 시절부터 연예 활동을 해왔다는 공통분모 덕분에 그들은 친자매와 같은 우애를 보였다. 설리의 비극적인 소식을 접한 구하라가 SNS를 통해 그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며 그의 팬들은 걱정 어린 격려와 응원을 보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구하라도 비극적인 소식을 전했다. 역시나 구하라의 비극적인 소식과 관련해 다양한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구하라가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렸을 때 구하라를 조롱하고, 상대 남성 입장에서 기사를 썼던 언론들이 이제서야 구하라를 추모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누가 구하라를 죽였는가"라는 제목의 기사에 누리꾼들은 <기자들>이라는 댓글을 달고 있다. 필자도 이런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비록 필자가 그런 기사를 쓰지 않았다하더라도 그것이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과거에도 반성하고 또 반성했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사진출처=구하라 SNS] 언론이 위기를 맞고 있는 현실에서 필자 혼자의 힘으로 언론 환경을 바꾸기는 어렵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라는 말을 하는 것조차 부끄럽다. 필자가 연예에 관련된 기사를 자랑스럽게 쓰는 날이 오기는 할까? 본 기사는 여창용 기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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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히치하이커가 만난 이 달의 문화예술인(1) - 회화주의사진미학 고려명
문화히치하이커가 만난 이 달의 문화예술인(1) - 회화주의사진미학 고려명
문화히치하이커가 만난 문화예술인(1) - 회화주의사진미학 고려명 포도밭의 장미- 가득 찬 공허의 향연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회화주의사진미학>의 가장 훌륭한 부분은 사실주의에 입혀진 작가의 독창적인 세계관과 보는 이의 감성에 호소하는 세련된 미적 표현력이다. 1850년대부터 1900년대에 나온 대표적인 모더니즘 사진작품들은 시대를 초월한 미학적 의미를 인정받는다. 작은 엽서사이즈부터 아트포스터까지 예술작품 앞에서 보내는 시간은 내면의 대화를 시작하게 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 날씨, 기분, 공간의 변화와도 같은 요소에 감상이 영향을 받고, 투사된 나의 감정은 작품에 비축된다. 감상에 기억과 성장의 겹이 쌓이며 거듭나는 것이다. 그래서 갤러리를 목적으로 한 외출이나 회화·사진작품의 소유는 나의 역사 만들기에 적극성을 갖겠다는 의지의 표명이 될 수 있다. 초(草)·충(蟲)·도(圖)라는 주제를 담은 백자토기를 시작으로, 야채와 곤충을 통해 익(날개), 허(존재의 의미), 궁(생명)으로 한국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사진작가 고려명. 실재와 이면으로 공(空)의 관계를 탐구하는 그가 한국으로 돌아와 <La rose du vignoble·포도밭의 장미>라는 전시로 작품을 선보인다. 그는 피사체를 아날로그 방식으로 근접 촬영한 후 대형화하여 대상의 본질을 추구하는 한편, 근원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작품들로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았다. 작가는 “필름사진을 통해 아름다움의 소유를 욕망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흔히 포도는 생명과 번영을 상징한다. 이번 전시는 포도와 장미의 수호관계를 테마로 한다. 그 둘은 포도원에서 서로를 지켜주며 위험에 처했을 때 신호를 보내는 공생관계이다. 이 때 희생과 상호작용이 따르기도 한다. (사진설명 : 포도 연작 앞, 고려명 작가) <이미지지제공 : 갤러리웰> 프랑스 사진학교를 졸업한 작가는 현지에서 파리테러 사건을 겪은 뒤 <고난 속 아름다움>이라는 주제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꽃이나 열매의 가장 아름다운 발색을 볼 수 있는 시기는 싱그러울 때보다 물기가 말라가기 시작할 때라는 점에서 인간의 삶을 겹쳐볼 수 있다. 그런 식으로 시각예술은 삶에 대한 여러 가지 사유를 제공한다. 포도연작을 통해 표현된 포도알의 상실은, 신을 향한 *아프락사스의 비상이라는 면에서 앞선 작품인 익(날개)과도 맞닿아 있는 듯하다. 한편, 요즘 청년 예술가들은 예전보다 과학에 큰 흥미를 갖는 경향이 있다. 작가가 필름현상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미지제공 : 갤러리웰> 포도밭의 장미- 가득 찬 공허의 향연작가 고려명은 근접 촬영 후 선을 강조하는 인화기술로 최대한의 가시성을 추구한다. 섬세한 디테일로 표현된 장미는 그 동안 몰랐던 새로운 별을 보는 기분마저 든다. 어떤 필름을 사용하느냐는 질문에 놀랍게도 우주관측용 필름을 이스라엘에서 공수해서 사용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포도와 장미의 연작들은 작지 않은 사이즈로, 각각 120호와 80호에 해당된다. 장미는 9미터까지 키워도 문제없는 사이즈로 촬영되었다. 우주가 폭발하는 듯한 장미는 회녹색과 담청색, 그림자같은 먹색으로 다가와, 피보다 붉고 벌레의 등껍질같은 군청색으로 관객을 유혹한다. 색을 배제한 포도들은 시간에 따른 질감의 변화를 더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는 관객들에게 아무것도 암시하거나 강요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작가는 “태양광이 전지에 닿았을 때 전기로 변하지 않느냐”며 관객들이 작품 속에 담긴 에너지, 생명력을 통한 아름다움을 느끼기를 소망하는 것이 전부라고 말한다. 설득이 아닌 공감의 소통이다. 작가와의 문답 - 작품이 음악적이다 고: 어릴 때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현의 흐름에 시간을 내맡길 수는 있었지만 거기에 매료되지는 못했다. 정작 완전히 빠져든 것은 카메라, 아날로그식 필름을 통해 보는 세상이었다. - 왜 하필 포도인가? 고: 포도는 비어있는 동시에 가득 차 있으며 시드는 모습마저 아름답다. 작품을 보는 이가 시련이 있다면 위로를 받고, 고민이 있다면 넣어두고 좋은 시기에는 에너지를 비축했다가 다시 꺼내갈 수도 있는 <나만의 감정은행>으로 사진을 감상해주셨으면 한다. 그런 방식으로 예술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미적 가치와 작품 자체가 가지는 에너지, 순환의 가능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릇이 깨끗해야 담을 수 있지 않나. 포도는 숨기고 있는 것이 없다. - 포도의 표정이 모두 다르다. 살아있다. 고: 맞다. 디테일의 표현을 극대화하는 것에 신경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 작품의 형태나 색보다 피사체가 가진 에너지를 표현하는 것을 중심으로 작업하는 작가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직접 작품을 보니 에너지뿐 아니라 입자의 향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꾸 보게 되는 힘이 있다. 고:해석에 대해서는 어떤 참견도 하고 싶지 않다. 사람도 처음 접했을 때는 알 수 없는 것이 있듯이, 작품을 직접 대하고 거듭 감상했을 때 그 것을 발견하는 기쁨이 있길 바란다. 눈을 그리자마자 승천했다는 용 그림처럼 관객이 바라보는 순간에 작품이 완성되고 새로운 의미가 탄생해서 보는 이의 마음속에 자리하면 좋겠다. -흑백처리가 많은데 특별한 이유라도? 고: 관객의 시선에 따라 색이 추가되는 연작이 있다. 흑백으로 디테일을 더 강조하고 싶었던 의미도 있다. -다음 작품에 대해 여러 가지를 구상중이다. 익·허·궁시리즈의 ‘속이 빈 매미껍데기’처럼, 어떤 흔적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 갤러리웰> 충만한 생명력이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감상하는 일은 많은 사색거리를 제공한다. 회화나 사진작품은 형태의 아름다움이라는 지점에서 시작해서 감상자의 내면에서 거듭난다. 이번 전시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위치한 [갤러리 웰]에서 12월 6일까지 선보인다. 정재희 <문화예술기획자 | 칼럼니스트>blesskassi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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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피의 사색 # 314 / '입추와 시간차'
래피의 사색 # 314 / '입추와 시간차'
[아시아빅뉴스 김동효문화칼럼리스트] [사진제공 = DJ래피] 입추(立秋)의 한자를 잘 보자. 入秋가 아닌 立秋다. 가을의 기운이 일어선다는 뜻이다. 사람이 몸을 일으키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듯이 가을이 몸을 일으키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입추라고 하여 곧바로 날씨가 추워질 것을 기대했다면 그건 자연의 원리를 간과한 것이다. 입추에 왜 이리 덥냐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는 천지자연 시간차의 원리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뭔가를 데울 때와 식힐 때도 시간차가 필요하다. 가스불을 지금 막 끄더라고 해도 그 열기는 제법 오래 남는다. 이게 바로 절기의 원리이며, 주역 12소식괘의 원리다. 천간과 지지 사이에도 시간차가 존재한다.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10개의 천간과 인묘진(봄)-사오미(여름)-신유술(가을)-해자축(겨울), 12개의 지지 사이의 엇갈림도 역시 시간차이며, 이는 인간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천간은 하늘의 기운 즉 욕망과 정신세계를, 지지는 땅의 기운 즉 현실 세계를 의미하는데, 천간이 무형의 세계 라면 지지는 유형의 세계다. 이 무형과 유형의 세계 사이에는 늘 시간차가 존재한다. 우리가 마음먹은 일이 곧장 현실이 되지 못하는 이치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여 "입추인데 왜 당장 시원해지니 않냐?"라는 질문은 "세상 일이 내가 원하는 대로 당장 왜 안 되냐?"라는 질문과 같은 맥락이 된다. Input의 과정과 Output의 과정에는 반드시 시간차가 존재한다는 이 간단한 원리만 기억해도 삶을 사는 데 많은 너그러움이 생긴다. 오늘, 8월 8일 입추부터 신미(辛未) 월에서 임신(壬申) 월로 바뀐다. 시절 운과 시절 인연이 바뀌는 전환점이기도 하다. 천지자연에 시간차가 있듯이, 우리에게도 오늘을 기점으로 고속도로를 만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울퉁불퉁한 자갈밭을 만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속도로라도 운전하는 사람이 교만에 빠져있으면 반드시 사고가 날 것이요, 자갈밭을 만나도 신중하고 겸손하게 운전하면 원하는 목적지에 언젠가는 안전하게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입추인 오늘을 기점으로 대지를 뜨겁게 달구던 무더위는 조금씩 자취를 감추다가 처서(處暑)가 되면 말 그대로 더위가 멈출 것이다. 입추라고 하여 당장 가을이 눈앞에 나타나지는 않는다. 계절에도 시간차의 너그러움이 필요하고, 우리의 인생사에도 시간차의 너그러움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새 "바람이 언제 이렇게 달라졌나?"라고 말하는 날이 온다. 그러니 몸을 일으키는 중인 가을을 기다리며 마지막 남은 여름날을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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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피의 사색 # 313 / '성게의 역습'
래피의 사색 # 313 / '성게의 역습'
[아시아빅뉴스 김동효문화칼럼리스트] [사진제공 = DJ래피]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라고들 한다. 며칠 전 강원도 고성 아야진 해변에서 성게를 잡았는데, 내게는 성게가 한 권의 책이었다. 그리고 그 책 속에는 내가 미처 몰랐던 놀라운 사실들이 많았다. 진정한 앎은 무지를 아는 데 있다고 했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무지했던가? 우선 성게의 영어식 표현은 Sea Urchin, 즉 '바다를 떠돌아다니는 부랑아' 되겠다. 부랑아라는 단어에서부터 뭔가 느낌이 싸했다. 암튼 성게는 가시를 이용해 이동을 하는데, 내가 직접 본 바로는 가시를 발처럼 이용해서 걷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성게는 석회질의 이빨이 있어 주로 해조류나 심지어는 바위에 붙어 사는 수생동물도 잡아먹으며, 해저를 지배하고 있는 동물이라고 한다. 왜 부랑아라고 불리는지 이해가 된다. 더 놀라운 사실은 지금부터다. 마치 밤처럼 생긴 성게의 껍질을 까면 알처럼 생긴 게 나온다. 하지만 그건 성게의 알이 아니었다. 그건 알이 아니라 성게의 생식소였다. 성게는 암수딴몸이다. 그게 무슨 말인가? 암컷 성게의 난소에서 배출된 난자와 수컷 성게의 정소에서 배출된 정자가 바닷물 속에서 체외수정을 해서 번식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성게알이라 부르는 것은 모든 성게, 그러니까 암컷과 수컷 모두에서 나온다. 이는 결국 수컷도 알을 품고 있다는 셈이니 말이 안 된다. 충격적이게도, 성게알은 성게알이 아니었다. 성게의 암컷 몸에 있는 건 난소, 수컷 몸에 있는 건 정소다. 그러니 ‘성게알’은 ‘성게 생식소’라야 정확한 표현이다. 마지막으로 이 부분이 가장 충격이었는데, 성게는 현재 지구온난화와 함께 바다의 사막화라고 불리는 백화현상의 주범인 골칫거리로 부상 중이라고 한다. 해조류를 무지막지하게 뜯어먹어버리기 때문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는다. 뭐든 적당해야 한다. 과한 것은 누르고, 부족한 것은 장려함으로써 균형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현명함 아닐까? 암튼 성게의 생식소는 이 여름이 가기 전에 우리가 많이 먹어서 없애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아, 그리고 성게의 천적이 되는 건 돌돔이라고 하더라. 돌돔이 성게 껍질을 파먹기 때문에 그렇단다. 병법과 여러 고전들이 틀린 게 아니었다. 역시 영원한 승자는 없다. 성게는 돌돔에게 먹히고, 돌돔은 사람에게... 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