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빅뉴스 김동효 문화칼럼니스트]
요즘 무슨 일만 생기면 ‘누구누구 사주풀이’ 같은 게 판을 칩니다. 마치 "그런 사주를 갖고 있기 때문에 저런 일이 벌어졌다"라고 하는 듯하죠. 그런데, 그 사람과 똑같은 사주를 가진 사람은 없을까요? 과연 그들이 매번 같은 사건에 휘말리고 같은 길흉화복을 겪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를 만나느냐, 어떤 환경에 노출되어 있느냐, 무슨 책을 읽느냐, 어떤 말을 하며 사느냐 등의 변수에 따라 각각 삶의 무늬는 달라집니다. 삶의 무늬(무늬 文), 그게 바로 인문(人文)입니다.
마중지봉(麻中之蓬), 구부러지게 자라는 쑥도 삼밭에서 나면 저절로 꼿꼿하게 자라듯이, 좋은 환경에 있거나 좋은 벗, 좋은 책, 좋은 말과 함께하면 좋은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사는 곳, 가는 곳, 쓰는 말, 먹는 음식, 만나는 사람 등이 바로 내 운명의 갈림길입니다.
명(목숨, 命)은 '입(口)으로 하여금(令)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내가 평소에 쓰는 말이 무의식을 지배합니다. 습관처럼 달고 사는 욕설, 비난하는 말, 차가운 말, 험한 말, 공격하는 말, 불평하는 말, 음란한 말.. 이 모든 말들이 그대로 무의식에 똬리를 틉니다. 그러다가 꽉 밟혀 있던 무의식의 용수철이 느슨하게 풀리는 순간, 뜻밖의 참사로 나타나죠. 이 모든 게 늘 우리가 목격하는 인간의 동일 패턴입니다. 그 사람이 평소에 사용하는 말과 행동을 보면 반드시 조짐이 보이고 패턴의 실마리를 읽을 수 있습니다.
Pendulum 진자 운동같이 반복되는 패턴의 함정에서 벗어나려면 늧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늧이란 ‘조짐, 징조’ 등을 뜻하는 우리말인데요, 흉과 화를 피해가려면 점집을 갈 게 아니라 나 자신이 늧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인리히 법칙은 한 번의 대형사고가 발생하기까지는 수많은 경미한 사고(29번)와 징조(300번)가 있다는 법칙입니다. 주역의 중지곤 괘에 나오는 ‘리상견빙지’도 같은 맥락이며 ‘서리를 밟을 때가 되면 결국 얼음이 어는 겨울이 오게 됨을 눈치채야 한다.’는 뜻입니다.
순자는 "역에 통달한 사람은 오히려 점을 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왜일까요? 역이 이미 마음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늧이, 변화의 흐름이 이미 마음속에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이라면 굳이 점을 쳐보지도 않아도 사태를 꿰뚫어보고 처신해야 할 바를 알 것입니다. 주역과 명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점을 쳐보지 않아도 나를 제어하는 통찰력과 건강한 상식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2019년입니다. 아직도 점에 의지해서야 되겠습니까? 중요한 건 늧을 파악하는 능력과 나를 돌아보는 통찰력, 시야입니다.
2019년의 주역은 미래를 예언하는 참언이 아니라 경계하는 말인 잠언으로 읽어야 합니다. 사람의 미래는 누구도 예언할 수 없고 예언해서도 안 됩니다. 미래는 다름 아닌 입(口)에서 출발합니다. 아울러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 역시 내 명을 좌우합니다. 여일리불약제일해, 몸에 좋은 음식을 하나 더 찾아 먹는 거보다는 내 몸에 안 좋은 음식을 하나라도 덜먹는 게 중요합니다.
맹자는 말했지요.
"명을 아는 사람은 위험한 담장 밑에 가지 않는다."
자기를 잘 아는 사람은 절대 위험한 담장 밑에 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