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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히치하이커가 만난 이 달의 문화예술인(1) - 회화주의사진미학 고려명

포도밭의 장미- 가득 찬 공허의 향연
기사입력 2019.11.08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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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히치하이커가 만난 문화예술인(1) - 회화주의사진미학 고려명
포도밭의 장미- 가득 찬 공허의 향연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회화주의사진미학>의 가장 훌륭한 부분은 사실주의에 입혀진 작가의 독창적인 세계관과 보는 이의 감성에 호소하는 세련된 미적 표현력이다. 1850년대부터 1900년대에 나온 대표적인 모더니즘 사진작품들은 시대를 초월한 미학적 의미를 인정받는다.

작은 엽서사이즈부터 아트포스터까지 예술작품 앞에서 보내는 시간은 내면의 대화를 시작하게 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 날씨, 기분, 공간의 변화와도 같은 요소에 감상이 영향을 받고, 투사된 나의 감정은 작품에 비축된다. 감상에 기억과 성장의 겹이 쌓이며 거듭나는 것이다. 그래서 갤러리를 목적으로 한 외출이나 회화·사진작품의 소유는 나의 역사 만들기에 적극성을 갖겠다는 의지의 표명이 될 수 있다.

초(草)·충(蟲)·도(圖)라는 주제를 담은 백자토기를 시작으로, 야채와 곤충을 통해 익(날개), 허(존재의 의미), 궁(생명)으로 한국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사진작가 고려명. 실재와 이면으로 공(空)의 관계를 탐구하는 그가 한국으로 돌아와  <La rose du vignoble·포도밭의 장미>라는 전시로 작품을 선보인다. 그는 피사체를 아날로그 방식으로 근접 촬영한 후 대형화하여 대상의 본질을 추구하는 한편, 근원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작품들로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았다. 
작가는 “필름사진을 통해 아름다움의 소유를 욕망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흔히 포도는 생명과 번영을 상징한다. 이번 전시는 포도와 장미의 수호관계를 테마로 한다. 그 둘은 포도원에서 서로를 지켜주며 위험에 처했을 때 신호를 보내는 공생관계이다. 이 때 희생과 상호작용이 따르기도 한다.
 
(사진설명 : 포도 연작 앞, 고려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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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지제공 : 갤러리웰>

프랑스 사진학교를 졸업한 작가는 현지에서 파리테러 사건을 겪은 뒤 <고난 속 아름다움>이라는 주제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꽃이나 열매의 가장 아름다운 발색을 볼 수 있는 시기는 싱그러울 때보다 물기가 말라가기 시작할 때라는 점에서 인간의 삶을 겹쳐볼 수 있다. 그런 식으로 시각예술은 삶에 대한 여러 가지 사유를 제공한다. 포도연작을 통해 표현된 포도알의 상실은, 신을 향한 *아프락사스의 비상이라는 면에서 앞선 작품인 익(날개)과도 맞닿아 있는 듯하다. 한편, 요즘 청년 예술가들은 예전보다 과학에 큰 흥미를 갖는 경향이 있다. 작가가 필름현상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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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제공 : 갤러리웰>


포도밭의 장미- 가득 찬 공허의 향연
작가 고려명은 근접 촬영 후 선을 강조하는 인화기술로 최대한의 가시성을 추구한다. 섬세한 디테일로 표현된 장미는 그 동안 몰랐던 새로운 별을 보는 기분마저 든다. 어떤 필름을 사용하느냐는 질문에 놀랍게도 우주관측용 필름을 이스라엘에서 공수해서 사용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포도와 장미의 연작들은 작지 않은 사이즈로, 각각 120호와 80호에 해당된다. 장미는 9미터까지 키워도 문제없는 사이즈로 촬영되었다. 우주가 폭발하는 듯한 장미는 회녹색과 담청색, 그림자같은 먹색으로 다가와, 피보다 붉고 벌레의 등껍질같은 군청색으로 관객을 유혹한다. 색을 배제한 포도들은 시간에 따른 질감의 변화를 더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는 관객들에게 아무것도 암시하거나 강요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작가는 “태양광이 전지에 닿았을 때 전기로 변하지 않느냐”며 관객들이 작품 속에 담긴 에너지, 생명력을 통한 아름다움을 느끼기를 소망하는 것이 전부라고 말한다. 설득이 아닌 공감의 소통이다.

작가와의 문답

- 작품이 음악적이다
고: 어릴 때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현의 흐름에 시간을 내맡길 수는 있었지만 거기에 매료되지는 못했다. 정작 완전히 빠져든 것은 카메라, 아날로그식 필름을 통해 보는 세상이었다.

- 왜 하필 포도인가?
고: 포도는 비어있는 동시에 가득 차 있으며 시드는 모습마저 아름답다. 작품을 보는 이가 시련이 있다면 위로를 받고, 고민이 있다면 넣어두고 좋은 시기에는 에너지를 비축했다가 다시 꺼내갈 수도 있는 <나만의 감정은행>으로 사진을 감상해주셨으면 한다. 그런 방식으로 예술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미적 가치와 작품 자체가 가지는 에너지, 순환의 가능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릇이 깨끗해야 담을 수 있지 않나. 포도는 숨기고 있는 것이 없다.

- 포도의 표정이 모두 다르다. 살아있다.
고: 맞다. 디테일의 표현을 극대화하는 것에 신경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 작품의 형태나 색보다 피사체가 가진 에너지를 표현하는 것을 중심으로 작업하는 작가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직접 작품을 보니 에너지뿐 아니라 입자의 향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꾸 보게 되는 힘이 있다.
고:해석에 대해서는 어떤 참견도 하고 싶지 않다. 사람도 처음 접했을 때는 알 수 없는 것이 있듯이, 작품을 직접 대하고 거듭 감상했을 때 그 것을 발견하는 기쁨이 있길 바란다. 눈을 그리자마자 승천했다는 용 그림처럼 관객이 바라보는 순간에 작품이 완성되고 새로운 의미가 탄생해서 보는 이의 마음속에 자리하면 좋겠다.

-흑백처리가 많은데 특별한 이유라도?
고: 관객의 시선에 따라 색이 추가되는 연작이 있다. 흑백으로 디테일을 더 강조하고 싶었던 의미도 있다. 
 
-다음 작품에 대해
여러 가지를 구상중이다. 익·허·궁시리즈의 ‘속이 빈 매미껍데기’처럼, 어떤 흔적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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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제공 : 갤러리웰>
 
충만한 생명력이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감상하는 일은 많은 사색거리를 제공한다. 회화나 사진작품은 형태의 아름다움이라는 지점에서 시작해서 감상자의 내면에서 거듭난다. 이번 전시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위치한 [갤러리 웰]에서 12월 6일까지 선보인다.
정재희 <문화예술기획자 | 칼럼니스트>
blesskassi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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