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칼럼] 래피의 사색 #93 '소년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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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래피의 사색 #93 '소년등과'

#93 '소년등과'
기사입력 2016.12.25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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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빅뉴스 김동효 문화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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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동효(DJ래피)] 


 

내게는 그간 개인적으로 가르쳐온 많은 제자들이 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그 제자들 중 유독시리 아픈 손가락이 하나 있다. 대학원을 졸업하였음에도 고향을 등지고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음악의 길로 들어선 제자. 그 제자가 탁월한 재능이 없다는 건 어떻게 보면 오히려 다행일 수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야나세 다카시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무슨 일을 해도 느리고, 머리도 나빠서 보통 사람들이 3일이면 아는 것을 30년 걸려서야 간신히 알게 될 때도 있습니다. 호빵맨도, 그림도, 그렇게 천천히 조금씩 해 왔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발자취가 만들어져 있더군요. 저보다 훨씬 빨리 출세했던 사람들이 어느덧 은퇴를 하는 걸 보니

내가 아주 탁월한 재능을 타고 나지 않아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야나세 다카시는 <호빵맨>시리즈의 원작자다. 과거에는 디자이너, 무대 미술가, 연출가, 사회자, 카피라이터, 작곡가, 시나리오 작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했다. 야나세 다카시가 <호빵맨>을 그린 건 늦은 나이인 54세 때의 일이었으나 그나마도 반응을 얻기 시작한 것은 60세가 넘어서였다고 하니 그의 인생은 길고도 긴 무명생활과 절망이라는 터널 속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을 출판했을 당시 출판사는 이런 그림은 이번으로 끝내세요라고 했다고 한다. 부모들은 호빵맨이 굶주린 사람에게 얼굴을 먹이는 장면이 잔인하다며 크게 반발했고, 전문가들도 심하게 혹평했다. 하지만 야나세는 자신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그가 가장 그리고 싶었던 장면이 바로 호빵맨이 배고픈 아이에게 얼굴을 먹이는 장면이었다고 한다. ‘남을 도우려 한다면 나도 상처받기를 각오해야 해. 나를 희생할 각오가 없는데 어떻게 정의를 실현할 수 있겠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어른들은 호빵맨을 싫어했지만 아이들은 호빵맨을 정말로 좋아했고, 그것이 야나세 다카시의 성공의 비결이었다. 그가 절망의 순간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대선배 만화가의 한마디였다고 한다. “낙심하는 자네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인생이란 말이지, 한 발만 더 나가면 바로 빛이라네. 도중에 관두면 그걸로 끝이야.”

 

그가 걸어온 길을 보면 '소년등과(少年登科)'라는 말이 생각난다. 이는 10대 때 과거 시험에 합격하는 것을 뜻한다. 선인들은 소년등과를 경사스런 일로 받아들이지 않고 경계했다. 일찍 재능을 드러내면 시기하는 이들이 많아 결국 꽃을 피우지 못하거나, 또는 자신의 재능을 믿고 자만해져 결국 큰 인물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 요약.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정신병원을 세 차례나 드나들며 불우한 10대를 보냈다. 20대 때는 만화 잡지를 창간했다가 군사정부의 미움을 사 두 차례나 수감되기도 했다. 그러다 40대가 되자 장장 700km에 이르는 스페인 순례길에 나섰는데 이것이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때의 경험을 살려 <순례자><연금술사> 등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주역에도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있다. '하늘 끝까지 올라간 용은 너무 높이 올라갔기 때문에 교만과 욕심이 하늘을 찌르고 더 이상 꼭대기가 없어 상대방을 존중할 줄 몰라 반드시 후회하게 되어있듯이, 부와 권력이 정점에 달하면 무너질 위험이 있으니 늘 조심하라'는 항룡유회. 정점에 도달하면 내려올 일밖에 남지 않고, 반대로 최저점으로 추락하면 올라갈 일만 남게 된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남과 비교하려 하지 말자. 무리하지 말고 내 페이스 대로 결승점을 향해 달려 가면 되는거다. 정상은 바닥부터 올라갈 때 더 큰 가치가 있다. '소년등과에 패가망신', '진예자, 기퇴속' 이라는 옛말들은 하나같이 '나아가는 것이 빠른 자는 그 물러남도 빠르다'며 빨리 감을 경계 했다. 크든 작든 성공에 이르는 위대한 비결은 오로지 꾸준함에 있다. 롱런하는 사람들은 크고 작은 결과에 결코 연연해하지 않으며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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