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칼럼]래피의 사색 # 156 / '자연으로 돌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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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래피의 사색 # 156 / '자연으로 돌아가라'

기사입력 2017.01.3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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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빅뉴스 김동효 문화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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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동효(DJ래피)]

 

"하지마!"로 대표되는 강요와 억압, 그것은 선과 악의 문제를 벗어나는 순간 더없는 불행의 씨앗으로 작용한다.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면,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나만 옳다'는 주장만큼 폭력적인 게 또 있을까. 내가 선택한 길만이 오로지 옳다면, 나와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은 다 틀린 게 되고 만다. 사문난적으로 몰려 처형당하기 전, "천하의 허다한 의리를 어찌 주자만 알고 나는 모른다 하는가!"를 외친 윤휴의 멘트는 내게 시공간을 초월한 울림을 준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퓌론은 이같은 폐해를 경계하기 위해 '모든 명제에는 똑같은 진리 값을 가지면서도 그와 정반대인 명제를 대립시킬 수 있다'는 대립 명제 등가성을 주장했다. 그러니 판단 중지(epoche)를 통해 절대 진리에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매우 공감되는 말이다.

 

장자의 제물론 또한 같은 맥락이다. '이것'이 있어야 '저것'이 있고, 애당초 ''라는 개념이 있어야 ''라는 개념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들 '다른' 것을 '틀리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학은 오리의 다리가 짧다며 늘리겠다고 덤비고, 오리는 학의 다리가 길다며 자르겠다고 덤비는 모양새다. 학은 다리가 길어서 나름 좋고, 오리는 다리가 짧아서 나름 좋은 거다. 다른 것을 틀렸다고 몰아가기 시작하면 비극이 싹튼다.

 

내 삶은 정답을 찾아서 위대한 게 아니라, 그저 내 삶이어서 위대한 것이다. 타인의 삶 역시 그 사람의 삶이기에 위대하다. 용은 자신의 여의주가 귀하다고 말똥구리의 말똥을 비웃지 않으며 말똥구리 역시 자신의 말똥이 더럽다는 이유로 용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사는 사람도 없고, 나를 해코지하기 위해 사는 사람도 없다. 저마다 자기의 삶을 살 뿐, 모두가 제 몫의 인생을 열심히 사는 주인공이다.

 

# 요약.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장자의 가르침은 산속에 들어가 도를 닦고 신선이 되라는 말이 아니다. 본성을 되찾자는 주장이다. 나 자신의 본성을 되찾고, 상대의 본성을 존중하자는 말이다. 억지로 상대를 바꾸려 들지 않고 있는 그대로 상대를 인정하자는 것인데, 그러려면 상대를 바라보는 내 시선을 바꿔야 한다. 내 시선을 바꾸려는 노력, 그것이 오해를 풀고 편견을 깨는 첫걸음이며 인정과 존중, 나아가 화해의 첫걸음이다. 행복을 자신의 변화만으로 이루는 데는 한계가 있다. 서로 변해야 한다. 이는 관계의 변화이며 결국 사회의 변화다. 다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 자연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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