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칼럼]래피의 사색 # 185 / '공격 대신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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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래피의 사색 # 185 / '공격 대신 공감'

기사입력 2017.02.16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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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빅뉴스 김동효 문화칼럼리스트]
래피 사진 1.jpg

[사진 = DJ 래피]

나는 TV를 보지 않는다. TV 없애 버린지 오래다. 내 일상의 패턴은 책 읽기, 음악, 강의, 고양이랑 놀기, 맥주 마시기, 여행 가기 외에는 거의 없다. TV는 보고 싶지도 않고 볼 시간도 없으며, 봐야 할 필요성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는 책과 기타 미디어 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너 왜 TV를 안 보니? 너 그러면 안 돼!"라고 얘기한다면 그 사람과 대화가 가능할까? 보고 싶으면 자기만 보면 된다. 나한테 TV를 보라 말아라 훈수를 두는 순간, 그것은 곧바로 언어폭력으로 변질된다. 나는 절대 그 누구에게도 나처럼 TV를 보지 말라고 말해본 적이 없으며 그러고 싶지도 않다. 위 상황이 이상적인 대화가 되려면 ", TV 보는 걸 안 좋아하고 책 읽는 걸 좋아하는구나. 그래, 사람은 다 다른 거니까."가 나왔어야 한다

 

대화는 타인과의 연결을 넘어 세상과의 공존이다. 대화라는 뜻의 Dialogue는 그리스어 dia(통하여) + logos()로 합성되어 만들어진 것이니, '말을 통하여'라는 뜻을 가진다. 대화란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놓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강요하기"위해서가 아니라 "나누기"위해. 상대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나를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은 대화가 아니라 폭력이다. 좋은 대화의 필수 조건은 경청, 곧 듣기다. 잘 들으려면 어떤 식으로든 나의 입장과 주장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들을 때는 말할 때보다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으니 훨씬 더 객관적이다. 상대의 말을 듣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열려있어야 상대의 주파수에 나를 맞추어 서로 공명할 수 있다.

 

말싸움이 있는 곳을 보면 보편적으로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강요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그것은 이미 대화의 영역을 벗어나 있으며 상대의 의사와 관계없이 내 주장을 강요하는 언어의 폭력이 되거나, 공명이 일어나는 평등한 대화가 아니라 수직성이 강한 모양새로 굳어진다. 이는 곧 대화의 실패를 뜻하며 심한 스트레스와 에너지 소모를 불러온다. 따라서 대화는 자신의 입장 고수와 강요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 요약.

 

가장 이상적인 상급의 대화는 그저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몰입하는 경우다. 공격 대신 공감의 피드백으로 이어지는 사이클이 좋은 대화의 작동원리다. 잘 경청함으로써 나를 돌아보게 되고, 잘 말함으로써 그 사람이 나를 통해 자신을 알도록 도울 수 있을 때, 우리는 서로 유익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서로의 입장을 버리지 못하면 진정한 대화에 이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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