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칼럼]래피의 사색 # 206 / '실존주의, 그리고 DOC와 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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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래피의 사색 # 206 / '실존주의, 그리고 DOC와 춤을'

기사입력 2017.03.13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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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빅뉴스 김동효 문화칼럼리스트]
래피 사진 1.jpg

[사진 = DJ 래피]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 / 잘못해도 서툴러도 밥 잘 먹어요 (중략) 그 아저씨 내 젓가락질 보고 뭐라 그래 / 하지만 난 이게 좋아 편해 밥만 잘 먹지 / 나는 나에요 상관 말아 요요요 (중략) 사람들 눈 의식하지 말아요 /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어요 / 내 개성에 사는 이 세상이에요 / 자신을 만들어 봐요/ 춤을 추고 싶을 때는 춤을 춰요 (중략) 그깟 나이 무슨 상관이에요 / 다 같이 춤을 춰봐요 이렇게 /

 

DOC와 춤을. 1997년에 나온 가사다. 나는 실존주의에 관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이 가사가 최고라고 본다. 키르케고르, 니체, 사르트르, 카뮈, 카프카를 통해 배우는 실존주의는 어렵지만, 'DOC와 춤을'을 통해 배우는 실존주의는 쉽다. 남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면, 부모나 사회가 정해 놓은 길이 아닌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게 실존을 택하는 길이다.

 

, 여기 뻔하디 뻔한 주말 드라마가 하나 있다. A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와 남동생과 함께 살았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도박 등으로 딸인 A에게 큰 상처를 줬다. A의 인생은 아버지 때문에 끔찍한 지옥이 되었다. 결국 가족에게 A는 끝까지 희생해야 하는 물질적 도구,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는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그레고르는 빚을 진 아버지, 아직 어린 여동생을 위해 좋아하지도 않는 외판원 일을 힘들지만 열심히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레고르는 벌레로 변했고 가족들은 그런 그레고르를 안쓰러워하기보다는 귀찮아하고 나중에는 죽기까지 바랐다. 그제서야 그레고르는 깨달았다. 자신은 단지 이 가족에게 돈을 벌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음을. 꿈을 버리고 택한 가족을 위한 희생이 부질없었음을.

 

사르트르는 이런 말을 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Existence precedes essence.)". A에게 본질은 '가족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라는 사회적 통념이었다. 역시 '변신'의 그레고르에게도 본질은 '가족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이었다. 둘 다 본질을 위해 삶을 살아왔지만 그 결과는 고통뿐이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실존을 위해 살았어야 했다. 남들이 뭐라 하는 사회적 통념이 아니라 자신의 상황에서 자신이 겪은 경험을 통한 진실을 우선했어야 했다. 실존주의란 이런 것이다. 사회적으로 말하는 통념이 모두에게 적용될 수는 없다.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대학교를 가야 한다. 대기업에 취직을 해야 한다. 결혼을 해야 하고, 했으면 무조건 아기를 낳아야 한다.' 등의 사회적 통념이 우리나라에는 특히 많다. 자신의 실존적 삶을 생각하지 않고 그러한 통념들을 억지로 따라가며 살다 보니 괴롭게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나는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자신이 바라는 것을 찾아가면서 생활 속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며 살기를 바란다. 무엇이 즐거운 것인지, 무엇이 내가 좋아하는 것인지 하나씩 경험하며 찾아가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진정 실존적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사회가 말하는, 이웃이 말하는 "넌 그래야만 해"라는 틀 속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순수한 자신의 실존적 삶을 위해 살기를 바란다. 만약 선생님이, 부모님이, 친구가, 가족 중에 누군가가 일찍 "남들 말대로, 남들 생각대로 살 필요는 없어."라고 말해 주었다면 누군가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해졌을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자신이 진정 바라는 게 뭔지 깨닫고 그것을 위해 전력 질주해야만 그나마 후회가 덜한 인생이 될 것이다.

 

# 요약.

 

자크 라캉. 그는 현대인들에게 '욕망의 타자성'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당신이 이루고자 하는 욕망이 온전히 당신의 것이냐"에 대한 근원적 물음이다. 부모나 사회가 정해놓은 길, 이런저런 타인의 꿈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착각하고 사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다. 판사, 검사, 의사가 되거나,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곳에 취직하는 것 등은 따지고 보면 진정으로 내가 원해서가 아닌 경우가 많다. 모두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나는 의사라는 '(Occupation)'이 아닌,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Vocation)'을 진정으로 원한다."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의사를 택한 경우도 물론 있으니까. 하지만 대다수는 사회가 원하는 타자의 욕망 일 순위에 그것이 있고 주변에서 원하니 따르는 케이스다. 명예와 안정이 보장되니, 마치 처음부터 그 길을 가려고 했던 것처럼 착각할 뿐이다. 자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실로 자신이 소망하는 것인지 혹은 소망하지 않는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 주체는 다시 태어날 수 있어야 한다. 타자의 욕망 속에서 끊임없는 자아의 욕망을 탐구하는 의지라도 있어야 내 주체는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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