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칼럼]래피의 사색 # 215 / '리섭대천(利涉大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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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래피의 사색 # 215 / '리섭대천(利涉大川)'

기사입력 2017.03.18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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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빅뉴스 김동효 문화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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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DJ 래피]

인생에 완성이란 게 있는가? 인생에 정답이란 게 있는가? 조상 덕, 부모 덕 등의 요행을 타고나지 못했거나, 그것을 아예 바라지 않는 사람이라면 어차피 인생에서 모험은 불가피하다.

 

인생이란 출발부터가 부조리한 것이다. 내가 원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 손들어 보라. 내 뜻과는 무관하게 이 세상에 던져지는 자체가 부조리의 출발이다. "세상이란 원래 부조리한 것이다."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걸 인정하지 못하니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좌절하고, 슬퍼하고, 한탄하고, 분노가 치밀 수밖에.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며 내 뜻대로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해야 수많은 실패와 부조리 앞에서도 초연해질 수 있다. 세상이 왜 이러냐고 한탄한다고 변하는 것은 없다. 변화를 꾀하고 싶다면 한탄할 것이 아니라 예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실천하고 움직여야 한다.

 

사마천 사기의 '백이 열전'에 있는 글을 잠깐 보자. 이 글의 마지막 부분은 2,0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질문이다. "매일 죄 없는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그 간을 꺼내어 회쳐서 먹으며 흉악무도한 짓을 저지른 도척은 결국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 그것은 도대체 도척이 행한 어떤 덕행에 의해서 인가? 선한 사람이 비참하게 죽고 악인들이 천수를 누리다 죽은 일들은 하늘에 도가 없다는 지극히 크고 뚜렷한 사례들이다. 근자에 들어서서, 올바르지 않은 품행으로 정도를 걷지 않고, 오로지 사람이 꺼리고 금하는 일만 골라서 하면서도, 그 몸은 종신토록 인생을 즐기며 부귀와 영화를 대대로 이어 끊어지지 않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와 반대로 발을 내 디딜 때는 항상 조심해서 마른 땅만을 고르고, 자기의 생각을 말할 때는 몇 번이고 생각한 다음에 행하고, 길을 갈 때는 지름길이나 좁은 길을 택하지 않으며, 공명정대하지 않은 일에는 결코 힘써 행하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화를 입게 되는 경우가 말할 수 없이 많이 있는 것은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나는 이것을 참으로 이해하지 못하겠다. 만약에 이것이 하늘의 도라고 한다면 과연 하늘의 도가 옳은 것인가, 옳지 않은 것인가?"

 

이렇듯 세상은 부조리하고 불공평하다. 어쩌면 모든 인간은 누구나가 도척이 될 가능성을 품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도척처럼 살지는 않겠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예()와 유()처럼 조심스럽게 살다 가겠다. ()는 코끼리란 뜻이다. 거대한 코끼리가 살얼음 덮인 겨울 시냇가 앞에서 주저하고 있는 모습을 연상하면 된다. 노자적 인간은 똘똘하고 명석한 인간이 아니다. 아둔한 듯이 보인다. 그러나 노자의 흐리멍덩함은 모든 명석함을 포용하는 것이다. ()는 원숭이를 뜻한다. 사방을 두려워한다는 이미지와 관련되어 있다.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는 두려움이다. 여기서 두려움이란 위기적 상황에 대한 공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포용하지 못하여 타인에게 말과 행동으로 폭력을 가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뜻한다.

 

도척 스타일이 아니라, 착하게 살며 스스로 개척해나가려는 자는 학문이든 예술이든 미지의 세계를 끊임없이 탐험하고 꿋꿋하게 개척해 나가야 한다. 도중에 여러 실패가 있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더 큰 도전을 해야 한다. 가진 게 없이 혼자의 힘으로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주역을 읽다 보면 수없이 반복되는 단어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리섭대천(利涉大川)이다. 큰 강을 건넘이 이롭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모험을 뜻하는 게 아니고 무엇이랴. 어떤 분야든 소위 성공이라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방식이 있다. 남을 따라 해서는 일시적으로 성공처럼 보일 수는 있어도 영영 자신은 행복할 수 없는 껍데기일 뿐이다.

 

# 요약.

 

이 세상에 반론의 여지가 없는 절대 진리는 오직 죽음뿐이다. 그 외의 모든 사안에 대해서는 판단중지를 내려야 한다. 세상의 모든 명제에는 똑같은 진리의 값을 가지면서도 그와 정반대인 명제를 대립시킬 수 있다는 '대립 명제 등가성'을 나는 지지한다. 그러니 판단 중지(epoche)를 통해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기본 생각이다. 이것을 공자의 논어 중, 그 유명한 四十而不惑(사십이불혹), 五十而知天命(오십이지천명), 六十而耳順(육십이이순)에 적용시켜 보자.

 

"40세에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50세에 천명을 알았고, 60세에 귀가 순해졌다.”

 

과연 그럴까? 나이 40에 흔들림이 없다고? 나이 60에 귀가 순해져 누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때마다 마음 상하지 않고 편하게 듣게 된다고? 주변을 둘러보라. 나이 60에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상대에게 폭언과 폭력으로 자신의 주장만이 옳다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나는 공자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공자의 저 말에 대한 해석을 달리해보자는 것이다. 그러니 "나이 40에도 얼마든지 흔들릴 수 있으니 이에 주의하여 잘 판단하고 도전하라", "나이 60에도 남의 주장에는 귀를 막고, 내 주장만 옳다고 우기는 사람이 될 수 있으니, 다양성을 인정하고 귀가 순해지도록 노력하자."라고 해석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아우야. 그러므로 지금 네가 흔들리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다. 고민하지 말고 마음껏 흔들리고 과감하게 도전해라. 롤러코스터도 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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