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칼럼]래피의 사색 # 241 / '지산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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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래피의 사색 # 241 / '지산겸'

기사입력 2017.04.11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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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빅뉴스 김동효 문화칼럼리스트]
래피 사진 1.jpg

[사진 = DJ 래피]

 

주역의 64괘 중 15번째는 지산겸괘이다. 지산겸은 곤상간하, 즉 위에는 곤괘 , 아래에는 간괘 인 대성괘를 말한다. 영어로는 Modesty인데, '''겸손할 겸'자다. 겸손과 겸양만큼 들어서 기분 좋은 단어가 또 있을까? 64괘 중에서 한 효도 흉하거나 인색하지 않은, 즉 나쁘지 않은 괘가 겸괘이다. 언제나 겸손하니 각 효가 좋을 수밖에 없다. 괘의 형태를 보면 땅 위에 우뚝 솟아 있어야 할 산이 땅 밑에 있다. 높은 산이 낮은 땅에 허리를 굽혀 겸손한 자세를 취한다는 뜻이다. 군자와 소인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언행과 겸손함의 정도에 따라 군자도 되고 소인도 되는 것이다. 높은 지위에 있고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되면 교만해질 위험이 있으므로 반드시 겸손해야 한다.

 

하늘의 기운은 차면 반드시 기울게 하고 기울면 반드시 채워준다. 인간은 교만하고 부유한 자를 꺼리고 미워하며, 겸손한 자에게는 호감을 느껴 친하고 싶어 한다. 겸손함은 높은 지위에 있을 때에는 겸손해서 더욱 빛이 나고, 낮게 처해 있을 때에는 겸손해서 자기를 낮추어도 누구도 무시하지 않는다.

 

겸손하면 빼놓을 수 없는 분이 바로 퇴계 선생이다. 율곡은 늘 만나고 싶었던 퇴계 선생을 찾아 안동으로 갔다. 이미 알고 있던 대로 퇴계 선생은 마음이 가난하고 겸손한 분이었다. 조선 최고의 지식인이었지만 퇴계 선생은 고향 마을에 세 칸 초가집을 짓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사흘 밤낮을 같이 지냈다. 50대의 대학자 퇴계는 20대 청년 율곡에게 배운다는 마음을 가졌다. 쉽지 않은 일이다.

 

퇴계 선생이 집중하는 공부 과제는 지식인들이 나아감과 물러섬을 동시에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갈 줄만 알고 물러설 줄 모르기에 권모술수와 권력 투쟁에 휘말리고, 정치가 폭력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호를 '퇴계'라고 지은 것도 '물러섬'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퇴계 선생은 과거시험을 목표로 하지 않는 공부, 즉 본성 공부를 가르치고 싶었다.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공부, 존경받길 원하면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고 실력을 연마하는 공부, 사람다운 사람으로 성장하는 공부를 가르치고 싶었지만 선생의 뜻을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런 중에 만난 20세 청년 율곡은 50대의 퇴계 선생을 놀라게 했고, 그와 며칠 함께 이야기를 나눈 뒤 그 기쁨을 노래한 시가 <율곡의 방문>이다. 50대의 대학자가 갓 20세 청년 율곡의 이야기에 깊이 귀를 기울이고, ‘그와 이야기하고 나니 새로운 게 보였다고 말하는 건 겸손이 몸에 배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예로부터 공부는 세상이 놀랄 질문을 찾아내는 길, 이익을 좇아가는 경서 공부에 길은 더욱 멀어지네. 고맙구나 그대여, 홀로 뜻을 세워 깊이까지 가겠구나. 그대와 나눈 대화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았다네."

 

사흘 밤낮을 율곡과 퇴계 선생은 벗이 먼 길을 찾아와서 즐기는 기쁨이자, 마치 높은 산이 땅 아래로 들어가 솟은 것 같은 기분을 즐겼다. 퇴계 선생의 낮추고 받아들이는 겸허한 마음은 결국 율곡을 더욱 성장하게 만들었다.

 

반면에 교만한 군주의 전형적 존재로는 옛날 은나라의 폭군 주왕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어진 신하의 말을 듣기 싫어했다. 그는 자신의 포악무도한 횡포와 그칠 줄 모르는 방탕에 대하여 충간하는 신하의 바른 말이 너무나 듣기 싫었다. 특히 비간은 죽음을 각오하고 왕에게 간언하였는데, 귀찮게 생각한 주왕은 "내 들으니 성인의 심장에는 일곱 개의 구멍이 있다니 정말인가? 내 그것을 보리라"하고 비간을 죽여 그 가슴을 갈라놓았다. 이렇듯 교만이 하늘을 찌르던 주왕은 마침내 주나라 무왕에게 토벌되어 몸이 죽고 나라가 망하였다.

 

우리나라에도 선비를 미워하고 바른 말을 싫어하다가 쫓겨난 교만한 군왕이 있었다. 조선왕조 제10대 임금 연산군이다. 연산군은 너무나 지나친 포학과 방탕한 행동을 견제하려고 번번이 들고일어나는 사간원의 사관들과 성균관의 유생들이 꼴보기 싫었다. 그는 마침내 사간원을 관제에서 삭제하여 폐쇄하고, 각도에 채홍사를 파견하여 미녀를 구해오라고 하고, 성균관을 폐지하여 기생 양성소로 만들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이 어디 있으랴? 그는 그러한 자기가 저지른 죄과에 대하여 결국 응보를 받았다. 겸손할 줄 모르는 자, 임금이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교만이 그로 하여금 왕위에서 쫓겨나게 하였던 것이다.

 

# 요약.

 

달도 차면 기울고(월만즉휴), 그릇도 차면 넘친다(기만즉일). 그러니 교만한 것은 오래가지 못하고, 겸손한 것은 오래간다. 겸손하다는 것은 내 몸을 낮추고 뒤로 물러설 줄을 알며, 남을 높이고 앞세워 주는 아름다운 덕이요, 삶의 질을 높이고 인간다운 삶을 사는 행복인 것이다. 내가 먼저 겸손하기. 내가 먼저 돕고 살기. 내가 먼저 손 내밀기. 내가 먼저 연대하기.무조건 내가 먼저. 속아도 내가 먼저. 말없이 내가 먼저. 끝까지 내가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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